brunch

브런치북 메아리 1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Nov 15. 2022

학벌이 종교가 된 나라

한국의 교육열

필자는 사업이 부진하던 30대 후반에 비즈니스를 잠시 접고 지인의 소개로 영어강사를 3년 동안 한 경험이 있다.
예상 못한 일이었고 경험이 없었던 터라 망설였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강사들 수업을 참관하고 그냥 따라서 하면 된다는 학원장의 권유에도 결정을 못했다.
그러나 원어민 강사와 대화를 하는 한국 강사의 어설픈 영어 실력을 보고는 한번 해 보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에는 원어민 강사의 강의를 무작정 따라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강의에 속도가 붙고 조금씩 수업 스타일이 익숙하게 되었다.
그 당시 사설학원 강사는 교사 자격증은 필요 없는 교육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일하는데 문제는 없었고 학원에서 좋아하는 강사의 조건이라면 학생들에게 인기만 있으면 최고의 강사였다.
다른 강사들의 강의 스타일을 따라 하다가 몇 달이 지나자 강의 방식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교수법을 익히기 위해  TV와 교육방송 인기 프로그램을 매일 보며 강의 방법을 공부했다.
노력한 만큼 효과는 금방 나타났고 강사 생활 6개월이 지나자 강의가  자연스러워졌고 무엇보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날 무렵에는 내 수업 시간에 앞자리에 앉으려는 착한? 수강생이 늘면서 학원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좋아졌으니 그다지 실력이 없는 강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강의법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교육방송 인기강사들의 교수법을 보면서  나에게 맞는 강의 스타일공부했고 학생들을 성의 있게 열심히 가르친 것 외에는 내세울만한 특별한 강의법은 없었다.
다만 사설학원의 특성상 상위 10% 위주로 강의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나의 노하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적응한 영어 선생님 생활은 계속되었고 1년이 지나자 과외를 해 달라는 학부모도 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늘고 학생을 지도하면 시험을 보지 않고 공부하는 스타일만 봐도 학생의 성적을 가늠할 수 있었다.

3년의 강사 생활에서 경험한 것은 공부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예외도 있었지만 드문 게이스였고 2,000 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직접 본 사실은 부모가 명문대 출신이면 자식도 공부를 잘하고 특히 부모가 고학력 전문직에 종사하는 자녀들은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은 나뿐 아니라 주위의 여러 선생님들도 공감하는 사실이었다.
물론 유전적 영향 외에 환경도 중요하고 적성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가 공부를 잘하고 환경이 좋아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고 부모가 지극 정성을 다해 고액과외, 유명학원 쫓아다니면서 열성적으로 공부시켜도 자식이 성적이 좋지 못한 경우는 많다.
그리고 IQ가 높아도 공부 못하는 학생도 있는 것은 사실이고 학생보다 엄마가 더 자녀교육에 열성을 다해도 공부 못하는 학생을 보면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학생이 아니라 부모가 불쌍하고 안타가웠다.
내 제자 중에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장기간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한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내 자신을 꽤 괜찮은 강사라고 생각했었다.
자녀의 성적이 부진한 학부모가 상담 신청을 하면 난감한 상황은  피하기 위해 상담은 상담 선생님이나 학원장에게 맡기고 자리를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입시 학원이 아니고 영어 학원의 특성상 수강 신청을 하면 일단 학생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고 class를 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class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대부분 학부모는 자기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은 모르고 레벨(level)이 떨어지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5학년은 5학년과 공부해야 하고 중학생은 중학생과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생각은 공통적인데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실력이 없는 학생을 고학년 class에 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준 차이가 심하지 않을 때는 학원 시스템 적응을 위해 처음 한 달간은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고 곧 class를 조정하겠다고 하면 학부모는 수긍을 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학부모가 원하는 데로 제 학년에 맞춰 class를 배정할 경우에는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이 고학년 수업을 따르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실력 없는 강사로 전락해야 하고 자기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은 생각 못하고 선생 탓만 한다.
영어 전문학원이라면 자주 겪는 사례이고
강사 입장에서는 학부모 의견을 무시할 수 없고 학원장 지시는 따라야 하니 안타까운 경우는 자주 발생한다.
class를 실력에 맞게 조정을 하고 몇 달만 학원에 맡기면 아무 문제가 없을 학생을 부모의 욕심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공부는 욕심을 낸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고 어느 과목이든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짧은 강사 경력으로 교육은 이렇다 저렇다 하고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라도 부모의 욕심 때문에 자녀 공부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의 교육열은 사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의 실상을 모르고 대한민국 엄마들의 뜨거운 대학 집착의 열기만을 칭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울대학 학생 70%가 서울지역의 학생이고 그중에도 교육열이 높은 강남 출신 학생이 많은 것은 통계가 증명하는 사실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하지만 영어로 의사 표현을 하고 영어 신문을 볼 수 있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
지방대학 출신이 서울에 있는 대기업에 입사원서도 못 내는 현실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4차 산업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기업 CEO의 학벌은 미국 IV리그와 해외 명문대 출신으로 바뀌고 있으며 현직 법무부 장관도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런 상황인 한국이지만 청문회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는 고위층 자녀의 입학 비리가 여전하고 잊을만하면 높은 자리의 매관매직은 들통이 난다.

학교의 수업만으로 대입을 치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반드시 시정되고 영구적 개선 방안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경제가 나쁘고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자녀들 사교육비는 엄마, 아빠가 함께 버는 가정도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고 단순히 가정의 경제적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두 가는 학원을 못 가는 자녀들은 소외되기 쉽고 빚을 내서라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 하는 대한민국 부모들은 은행 대출뿐만 아니라 사채 빚도 무섭지 않다.
가난하던 시절, 소 팔고 논 팔아 서울 유학 보내던 부모 마음이 시대가 바뀌면서 대출받고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현실이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이 되었다.

성적이 중간 수준인 학생이 있었다.
착하고 성격도 좋고 친구도 많은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이었지만  아빠 없이 엄마가 키우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엄마의 아들 사랑은 각별했고 자식 교육열은 대단했다.
학생의 엄마에게는 소원이 있었는데 아들을 의사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고액과외를 시키고 유명 강사가 있는 명문 학원을 엄마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켰지만 아들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고민 고민하던 엄마는 아들을 한의원에 데리고 가서 총명탕을 지어 먹이고 머리 좋아진다는 침도 몇 달간 맞췄지만 소용이 없자 이번에는 아들을 대학병원 신경과를 데리고 갔다.
멀쩡한 아들을 종합 검사 다 시키고 MRI부위 별로 다 찍고 유명한 교수 닥터에게 예약을 하고 진료 신청을 했다.
MRI 판독을 하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본 닥터는 무슨 증상이 있어서 병원을 찾았냐고 묻자 아들 성적 올리려고 고생, 고생한 엄마는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아들을 의과 대학에 보내야 하겠는데 이 방법, 저 방법 써봐도 안되니 아들 머리를 좋게 할 약물 처방이나 수술은 없냐고 물었다.
황당한 의사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잠시 후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종이 한 장을 프린터로 뽑아 그 엄마에게 주었다.
그 종이는 아들의 처방전이 아니라 엄마의 정신과 진료 의뢰서였다.

영화나 드라마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게 사실이다.
몇 해전 상위 계층의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 SKY 캐슬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세자를 경합으로 뽑는  현대판 사극 드라마가 인기 순위 최고를 기록하며 방송 중이다.
TV에서는 영어유치원 "얼만데?" 광고가 재미있고 자녀 심리를 상담해 주는 프로그램은 인기를 얻으며  MC 심리학 박사는 스타가 되었다.
이미 학벌이 종교가  대한민국에서는 교육문제는 해결방안이 없는 것 같다.

중년이지만 싱글인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이해되고 나는 무자식 상팔자를 실감하며 산다.

이전 14화 문화의 양과 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