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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메아리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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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21. 2023

믿음은 배신이 예정된 계약

믿음과 배신

마태오 복음 17장 20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라 하면 저리로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신 말씀이 있다.

이 구절 외에 성경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이 자주 등장한다.

신에 대한 굳은 믿음이 아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신의를 지키는 것을 동양 철학에서는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공자의 제자이자 춘추전국시대에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는 "백성이 먹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백성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자공이 "그 가운데 꼭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 "라고 대답했다.

이어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이르고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설 수 없다."라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했다

무신불립이란 작게는 개인의 관계에서나 크게는 정치에서도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설파한 뜻으로 이때부터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좋은 사람들과 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고 진정한 관계는 오래될수록 가치를 더하는 진귀한 보석과도 같다.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면 우선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 관계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연한 만남이 10년이 넘는 우정이 되거나 우연한 계기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우리네 모습이다.  

관계를 지탱하는 믿음은 의리를 일컫는 말이고 의리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그러나 믿음은 주관적인 선택이므로 강한 믿음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릇된 종교와 사상에 대한 믿음은 광신적인 행동을 초래할 수 있고 테러리스트와 같은 무모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악행의 원인도 된다.

믿음은 객관적 이성에 의한 작용이 아니므로 상대적이며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주관적 감성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면 의리를 지키게 되고 이러한 믿음과 의리는 동질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공통분모에 의한 부정적인 행동도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 이전에 모두가 갖춰야 하는 믿음은 관계를 위한 필수적인 것이지만 자신의 뜻과 상대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다.

흔히 같은 뜻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믿음과 신뢰는 의미가 다르다.

믿음은 개인적인 감성이지만 신뢰는 객관적이고 혼자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타인의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뢰는 짧은 시간에 쌓을 수 없는 노력과 객관적 평가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믿음과 신뢰는 엄밀한 차이가 있는 의미이다.

20세기부터 등장한 '신용사회'란 말은 현금 없이 신용에 의해 거래가 가능한 사회를 일컫는 것이며 신용이 없다는 것은 신뢰를 할 수 없다는 뜻이고 개인도 회사도 나라도 마찬가지로 신용이 없다면 은행 거래 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함께 모여 사는 사회는 질서와 체계적인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며 보더 나은 위치를 위해서는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령 인원은 많고 공석인 상사의 직책이 하나뿐이라면 상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기에 필요한 방법에는 영향력 있는 상사의 편에 줄을 잘서야 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입사 동기나 절친한 동료가 갑자기 돌변하는 사유의 원인이 이와 같은 자신의 이익 때문이고 그동안의 좋았던 관계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사람은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며 눈앞의 이익 있다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이익이 크면 클수록 윤리도 신앙도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은 현대를 사는 직장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사실이기 때문에 직접 당한 사람만 마음이 아플 뿐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일을 하청 받기 위해 사활을 건 중소기업 대표들은 좋은 정보가 있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기업을 방문해 세일즈를 하고 가까스로 틈새가 보이면 기획서를 제출하고 몇 달간 밤잠을 자지 않고 공을 들여 모든 준비를 하지만 대기업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도 그 회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로 끝이 난다.

몇 달간 들인 노력과 투자를 위해 들어간 돈도 물거품이 되는 것이지만 갑이 결정한 일을 을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듯 개인의 강한 믿음도 노력만큼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목적이 있는 집착은 이익을 위한 행위이므로 진정한 믿음과는 구분이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믿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편취하려는 못된 인간들이 많다.

예를 들면 매일 가는 헬스클럽에서 웃는 낯으로 항상 친절을 베풀고 한동안 친분이 쌓이면 그 관계를 이용해 목적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보험 세일즈를 하는 사람과 다단계 회사 판매원이 많다.

추천하는 상품이야 거절하면 그만이지만 그동안의 친절과 배려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되면 불쾌하고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행동은 치밀한 계획이 있는 의도된 접근이며 믿음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술책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씁쓸한 자괴감도 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인터넷 쇼핑에서 돈을 입금하면 사이트가 사라지는 경우는 흔한 사례이고 뉴스에서도 보도된 적이 많다.

요즘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다 보니 손해 보지 않으려면 자신이 항상 조심해야 하는 방법 밖에 없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브런치와 블로그에서도 성행하는 경우이므로 과도한 댓글과 칭찬도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

브런치 작가들이라면 자신이 올린 글에 공감과 상세한 칭찬을 댓글로 올리면 상대의 작품을 고마운 마음으로 읽고 감사의 답글을 올린다.

이렇게 작가와의 교류가 진행되고 상대의 글을 읽고 댓글로 대화를 하다 보면 친분이 쌓이고 자신의 글에 긍정적 평가를 하는 상대의 댓글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인터넷상의 교류일지라도 친분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댓글을 통해 회원 가입, 유료 상담이나 비싼 코칭 강의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작가 소개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의심이 간다면 고객센터로 신고를 해야 더 많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대부분 이런 의도로 접근을 하는 부류들의 박사 또는 교수의 이력은 가짜가 많기 때문에 본인이 조심하는 것 밖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  

이런 작자들은 소속된 직장을 이니셜로 소개하는데 사실 교수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소속을 이니셜로 표기하지 않는다.

세상이 워낙 험악하고 서로 속이는 세상이지만 순수한 문학을 사랑하고 작품을 교류하는 브런치까지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지만 그만큼 영업도 고도로 진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노라면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기간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서면 심한 배신감에 대의 잘못을 따지게 되지만 사유야 어쨌든 사람의 마음이 돌아서면 어쩔 방도가 없는 것이고 사유를 가리기 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하는 편이 자신의 심리에는 도움이 된다.
물론 처음에는 심리적 충격은 당연히 크겠지만 배신감과 분노는 어떤 경우이든 자신에게 해만 될 뿐이다.
차라리  이런 사람이었다면 이쯤 해서 매듭짓는 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 여기고 그냥 흘려 보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상처도 배신감도 시간이라는 묘약은 치유의 효과가 명확하기 때문에 아무 일 없듯이 회복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을 잘못 판단한 자신의 실책을 탓한다면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은 어렵지 않게 희석이 가능하고 차후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믿음과 사랑, 소망은 성경에도 언급하듯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덕행이고 각박한 세상을 사는데 마음의 안식과 같다.

그러나 믿음이란 배신이 예정된 계약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잠언 21장 21절에는 "정의와 신의를 좇아서 살면 생명과 번영, 명예를 얻는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믿음과 신의가 없다면 긍정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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