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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메아리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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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17. 2021

핫한 게 좋은 세상

뜨거운 게 좋아

요즘 핫(hot) 한 게 대세인 시대이다.

모든 문화에서 핫한 것을 좋아해서 패션도 핫 해야 멋있고 음악도 핫 할수록 인기가 있고 영화도 드라마도 마찬가지여서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뜨겁다는 뜻의 hot은 높은 인기를 나타내는 세계의 공통어이며 예전부터 hot의 의미는 자극적이란 표현으로 강한 개성이나 선정적인 뜻도 포함되는 용어이다.

1961년 핫한 배우 마릴린 몬로가 토니 커티스, 잭 레먼과 출연한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가 인기를 끌면서 hot이란 단어가 유행이 되었다는 말이 있고 1980년대 최고의 인기 록밴드 듀란듀란도 'Some like it hot'란 노래를 히트시켰으며 최근 일본에서도 인기 애니메이션의 테마곡으로 'Some like it hot'이란 노래가 인기가 있다고 하니 뜨거운 게 좋은 것은 세계가 동일한 것 같다.

핫한 것은 음식도 마찬가지여서 뜨거운 것을 잘 먹으면 아내 복이 있다는 말이 있고 매워서 못 먹을 정도로 매운 음식 역시 인기가 좋다. 원래 한국인은 짜고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고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는  고춧가루로 발효시키는 음식이다.

고추는 라틴 아메리카의 열대 식물이며 페루에서는 2000년 전부터 고추를 재배했고 우리나라에 16세기 말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고추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입 배경은 여러 가지 설이 있고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많았지만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선에서 '고쵸'와 ‘초장’을 먹었다는 기록을 통해 고추로 만든 고추장이라는 근거로 전해진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capsaicin)은 해독작용, 항암작용과 함께 통증을 감소시키는 진통작용을 한다. 혈액순환을 돕고 입맛을 돋우며 열을 내기 때문에 대사기능에 도움이 되고 지방을 연소시키는 작용도 있지만 많이 먹으면 위점막을 자극해 위와 장에 좋지 않다.

흔히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이 생각이 나는데 신경 세포에 캡사이신 성분이 기분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신경세포가 느끼는 매운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체내에서 엔도르핀을 분비하기 때문이며 매운맛에 의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땀이 나게 되므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국인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마늘의 알리신(allicin)은 강한 항균 작용과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인슐린 분비에 관여하여 당뇨병에 도움이 되며 암 예방 효과가 높은 훌륭한 음식이다.

모든 양념에 들어가는 후추는 주성분 피페린(piperine)이 항산화, 항염, 항균 작용도 하는 세계인의 향신료로 역사 또한 깊다.

과거 유럽의 육식문화는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 염장을 하고 소시지와 햄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누린내가 심했다. 후추의 등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신께 받은 만나(manna)와도 같은  신비의 향신료로 고기의  독특한 냄새를 없애고 방부제의 효능과 함께 맛을 상승시키는 최고의 양념이었다.

인도의 남부가 원산지인 후추는 서기 400년 경 유럽에 보급되었고 스파이스 루트(spice route)라는 알렉산드리아와 베이루트를 통해 아랍 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아랍 상인들이 베네치아로 후추를 가지고 가면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던 베네치아 상인이 유럽 전역으로 공급했다. 당시 후추는 왕실과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부의 과시로 원산지의 100배가 넘는 가격이었고 하도 귀한 탓에 금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기도 했다. 당시 후추 1 상자의  가격은 노예 1명 보다 3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으며 왕실과 귀족들의 전유물로 금 보다 비싼 귀한 재료로 서민들은 후추를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12~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후추 가격이 급등했고 15세기 오스만 트루크 제국이 성장하면서 알렉산드리아와 베이루트의 후추 교역로를 점령하고 독점하면서 후추에 엄청난 세금을 올리며 후추를 무기화하자 후추 가격은 폭등했으며 후추 전쟁은 시작이 되었다. 이후 유럽의 열강들은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비싼 향신료를 찾기 위해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를 선두로 항해를 시작했고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바닷길을 통해 포르투갈의 함대가 1498년 인도에서 포르투갈로 후추를 들여오게 되었다. 이어 콜럼버스가 후추를 찾아 탐험을 떠나지만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16세기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포르투갈의 마젤린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에서 후추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유럽의 후추 시장을 장악한다. 이어 엄청난 돈이 되는 후추에 영국과 네덜란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 해양 강국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엄청난 양의 후추를 유럽으로 들여오면서 후추 가격이 폭락하여 평민들도 후추를 먹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후추를 확보하기 전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파티를 할 때 후추를 식탁에 쌓아 부를 과시하였고 후추를 넣은 술은 귀족들에게 최상의 대접이었다. 오늘날 동서양의 모든 식탁 위에 소금과 후추가 놓여있는  유래는 중세 유럽의 귀족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양으로 후추가 전래된 시기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229~589년)에 인도에서 직접 중국으로 들여왔고 우리나라에 후추가 들어온 시기는 1220년 고려로 전해지는데 동양에서도 후추는 매우 귀한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특권층만 맛볼 수 있었고 한방의 약재로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귀하고 돈이 되는 것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권력이 집중되어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설탕산업을 위해 노예무역이 성장했으며 차를 재배하고 가공한 상품 역시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만들어낸 귀한 무역상품이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몸에 좋다고 하면 만병통치약처럼 유명세를 타던 역사는 아직까지 동양에서는 그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보약 문화가 정착된 한국은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는 정보가 방송을 타면 품귀현상까지 일어나다가 과학적 효능을 강조하며 대기업에서 곧바로 상품으로 출시된다. 제철음식이 원액으로 가공되면 동의보감이 등장하는 광고가 어르신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거기에다 계절적 특성이 포장되면 건강보조식품이 보약으로 둔갑해 약장사들은 큰돈을 번다. 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인삼과 달라서 불로 가열하면 성분이 감소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고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방송으로 보도되었음에도 마늘을 가공한 제품이 출시되고 광고를 통해 접하게 되면 누구 말이 사실인지 혼란스럽다.

이런 현상은 식품의 효능보다 상업 마케팅의 결과로 탄생하는 상품들이며 발전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므로 기업의 매출만 증가시키지만 과학적 효과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후추가 중세시대에 경제적 가치를 낳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기의 냄새를 없애는 특성 때문이었지만 후추는 희귀성이 있는 수입품이고 소비층이 상위 귀족계급에 한정되었던 까닭이었다. 즉 재료의 특징과 함께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부의 과시로 연결되는 것이며 고가의 가격이 매겨지면 독점을 위한 탐욕이 권력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새로운 경제 분야가 탄생하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무엇이든 귀한 재료는 희귀성 이전에 오랜 기간 대를 이어 전래되는 효능 때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상어의 지느러미 샥스핀은 환경 운동가들의 거센 반대 여론과 국제법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가에 거래되는 고급식품이다.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왕족과 귀족들의 보양식품으로 상류층에게만 소비되었던 식자재인데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했던 과거에도 효험이 있었기 때문에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동물성 콜라겐은 분자구조가 커서 인체에 잘 흡수되지 않는 반면 어류 콜라겐은 체내에 흡수가 잘 된다는 과학적 증명이 발표되면서 샥스핀을 먹지 않았던 나라에서도 부유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으며 동남아의 고급 음식에도 샥스핀이 추가되는 요리가 많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시합 전 스테미너 보충을 위해 장어 통조림을 즐겨 먹었다는 얘기가 있고 육식이 주식이었던 서구사회에서도 오메가 3의 기능이 입증되면서 신선한 생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터키에는 소금과 후추만 뿌린 고등어 샌드위치가 대중적이며 장수의 비결이라는 지중해 요리는 채소와 생선살을 올리브 오일에 볶은 요리가 대분이고 후추와 소금으로만 맛을 내는 것이 대중적인 음식이다. 후추가 비싼 식자재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며 시대가 흐르면서 인기 있는 작물은 사람의 손을 통해 재배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대중화되는 것은 모두 시간이 해결해 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나라마다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있다.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요리의 비결은 신선한 재료의 맛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는 비법이 있는데 대부분 향신료를 과하게 쓰지 않고 맛을 내기 위한 요리사의 오묘한 재료의 배합과 조화로 최고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신선하고 좋은 식자재는 음식만의 향과 맛이 있기 때문에 양념이 강하면 본연의 맛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생선은 회로 즐겨야 맛이 나고 신선한 소고기는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살짝 익혀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재료 본래의 맛과 향 때문이다.


음식에도 궁합과 조화가 있듯 세상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며 어느 곳이나 어울리고 보기 좋은 것은 균형과 조화가 있기 마련이고 균형과 조화는 예술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성숙한 인격의 비율이라 말할 수 있다.

아무리 핫하고 자극적인 게 인기가 있다 해도 자극적인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의 특수성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모든 분야에 자극적인 뉴스를 일부러 생산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강한 특징이 가치를 발휘하려면 대다수의 관심과 긍정적 평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언제나 자극적인 것은 지속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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