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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21. 2023

인생의 가을

나이가 든다는 것

 50이 넘은 필자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벨을 든다.

운동할 기분이 아니고 몸과 마음이 무거워도 일단 시작하면 곧 추진력(momentum)에 의해 활력이 생기고 계속해서 운동 프로그램을 마칠 수 있다.

한바탕 땀을 빼고 나면 스트레스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컨디션은 회복된다.

술을 꽤나 좋아하는 주당이지만 특히 기분이 나쁠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젊을 때와 달리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고 행동에 대한 결과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이가 든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새로운 것보다는 예전것이 좋고 쉬는 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줄었다는 것, 여행과 외식이 뜸하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은 음식도 마찬가지이고 음악도 예전에 즐겨 듣던 음악만 듣게 되며 패셔니스트라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좋아하는 스타일은 유행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나만의 감각 변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지만 젊을 때는 유행에 민감하고  나 역시 또래들과 꼭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영화도 많이 봤고 빌보드차트의 인기 팝을 많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으로 기억하는데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했던 나이키가 한국에 상륙하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엄마를 조르고 졸라 기어코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기쁨을 누렸다.

사춘기에 시작된 취향은 세대를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때 시작된 취향이 젊을 때까지 진화하고 발전한 것은 누구나 동일할 것이다.

취향이란 성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형성된 취향이 진화하며 적성에 맞는 전공을 공부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 향상됐다는 의미이고 긍정과 부정의 구분이 명확해졌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행을 초월해 진정한 가치를 실감하고 감성 보다 이성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중년의 성숙이며 어디를 가든 대우를 받는 자신이 사라진 젊음을 보상받는 낙이라 사료된다.

얼마 전 유튜브로 음악을 듣다가 문득 중년의 '릭 에슬리(Rick Ashley)'의 최근 공연을 보게 되었고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택에 연속해서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가수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젊을 때 그토록 멋있고 예뻤던 가수들은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지만 곱게 늙은 가수들을 보며 마치 친척 아줌마, 아저씨를 오랜만에 뵙듯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을 계속해서 중년 가수들의 공연을 봤다.

세월의 무게는 세계적인 스타들도 어쩔 수 없는 연유로 얼굴엔 주름이 졌고 살은 쪘지만 중후해진 목소리가 세월과 함께 더욱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았다.

아직도 우아한 캔디 덜퍼(Candy Dulfer)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은 몇 년이 지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지만 부디 건강하고 곱게 나이 드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악을 듣는 관객들도 나처럼 나이가 든 중년이었지만 젊을 때 못지않은 시들지 않은 감성은 모니터를 통해서도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젊을 때 지겹도록 듣고 또 들었던 CD, 카세트 겸용 플레이어가 떠올랐고 요즘도 카세트 플어이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돌아보면 어제 같은 생생한 기억들이 빨리도 흘렀고 시간과 더불어 어느새 나도 중년이 되었지만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은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잘 살았노라 여겨진.

물론 굴곡진 인생의 여정에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도 있었으나 신께서는 극복할 수 있는 고난만 주셨기에 힘겨운 시간이 지나면 크던 작던 좋은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중간쯤 지난 나의 여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무탈하게 오게 된 시간을 허락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람은 위를 쳐다보고 살면 사는 게 지옥이고 아래를 보고 살면 지금이 천국이라는 옛말처럼 이상이 높았던 연유로 상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산다는 것은 현실을 감사할 때 평화가 있고 마음이 편안할 때 기회가 보이는 법인데 순리를  거스른 과욕 탓에 감당해야 할 힘겨운 고통을 스스로 자청하고 살았던 것이다.

자처했던 역경을 견디고 나면 보상되는 만족은 잠시였고 단지 표면적인 성장을 위해 감행한 일들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도 지난날의 힘겨웠던 시간도 나름대로 가치는 있었고 오르막 내리막을 숱하게 겪은 자취가 오늘의 나를 형성할 수 있었기에 지난 과거에 대한 미련은 없다.

생각해 보면 정서도 나이를 드는 까닭에 옛 노래의 가사는 그대로이지만 선율에서 울리는 애절함은 예전의 감성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은 젊음이 그립고 그 시절의 정서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젊은 날의 풋풋한 정서보다 무르익은 감성에서 체감하는 정서가 진정 가치 있는 감각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농익을 때는 곧 시들어질 내일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절정의 멋과 맛의 진수는  시들기 이전의  가장 고귀한 시간이 말하고 싶다.

그나마 지탱할 건강이 있어야 쓸모 있는 중년이지만 젊은 세대의 개성과 감성도  포용할 수 있다면 사는 게 권태롭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고 새롭다는 것은 기대와 희망이 있다.

아날로그 시절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추억은 소중한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며 디지털의 혜택은 훨씬 편한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지난날의 애착은 추억으로 족하다.

좋은 일, 궂은일 예정 없이 겪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며 기쁨과 슬픔의 오솔길을 걸으며 사는 모습은 과거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노라면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내 것은 항상 작게만 보이지만 이 세상에서 천국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마감한 뒤 천국의 기쁨도 느낄 수 없다.


인생의 가을이 지나면 인생의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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