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메아리 2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Sep 13. 2021

명절은 축복이다

한국인의 명절

아날로그 시대에는 행사가 많았고 국민들의 진심 어린 참여도가 높았다.

올림픽의 열기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했고 빨간 악마로 기억되는 월드컵의 물결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개양했고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애국가와 함께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국민들은 숨겨 두었던 비상 화패인 금붙이도 서슴없이 내놓았고 해외 교포들도 100달러 보내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라 살리기에 생업도 미루고 송금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존엄에 고개를 숙이던 시절이었으며 이기주의도 개인주의도 국가의 이름 앞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고유한 전통이 살아 있었고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던 시대였다.

혼밥, 혼술이란 단어가 없었던 시대였으며 1인 가구가 많지 않아 가족 개념 또한 변함이 없는 한국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양극화된 지금에 비하면 정이 넘치고 예절이 있었던 정상적인 시절이라 생각된다.


세상이 바뀌어도 현존하는 전통적 행사는 뭐니 뭐니 해도 명절이 아닐까 싶다.

민족의 대이동이 있어 명절이 가까워지면 코레일, 항공기 예매 상황을 방송하고 이른바 대목이라는 백화점 세일 시즌은  명절이라는 한국의 축제를 홍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명절이 좋은 것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이고 차례라는 예식을 통해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고 1990년대까지는 홀리데이 시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뉴욕과 같은 대도시가 한산했었고 엄청난 할인행사를 하는 대형 쇼핑몰 세일이 미국 전역의 대규모 행사였다. 한국의 추석과는 다른 시기이지만 추수감사절에 이어 크리스마스 시즌이 연결되기 때문에 홀리데이 시즌의 축제 분위기가 추위를 녹이는 시기이다.

중국에도 명절은 국가적인 행사이고 나라마다 종교에 의한 명절이라는 전통은 가족과 혈연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명절이라면 선물과 음식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한국인의 보양 문화는 역사가 깊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이유로 명절 때가 되면 보약 세일 광고를 언제나 볼 수 있고 백화점, 쇼핑몰마다 다양한 선물 세트가 할인 가격으로 판매를 한다.

시장의 대목 장사가 대형 쇼핑몰로 옮겨진 시기는 꽤나 오래됐으며 고객이 취향이 다양한 이유로 수요에 부응하는 좋은 상품세트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부모님께 드리는 보약 선물이나 세일 가격에 구입하는 명품을 제외하면 요즘은 상품권이 선물을 대신하고 가족 간에는 현금으로 명절 인사를 하는 가정이 많다.

어동육서, 홍동백서, 조율이시에 따라 차례 상을 차리는데 해마다 뉴스에서 4인 가족 기준으로 차례 상에 드는 비용을 방송하고 차례 상 가격은 그 해의 물가지수와 체감 경제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추석에는 우선 탐스럽게 잘 생긴 햇과일과 그 해에 수확한 햅쌀을 기본으로 송편과 산적, 전, 생선이 차례 상에 오르고 삼색 나물과 ()이 명절 메뉴이다.

지역과 가정마다 상을 차리는 방식은 다르지만 소고기 산적과 돼지고기 산적, 모양 좋은 닭백숙에 고명을 얹는 가정도 있고 요즘에는 산적과 함께 갈비찜을 올리기도 하며 다진 소고기로 너비아니를 만드는 가정도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돔배기라는 상어산적이 빠지지 않고 전라도에서는 홍어가 상에 오르고 문어를 올리는 지역도 있다. 옛날에는 꿩이 많아 꿩으로 산적을 만들고 다진 꿩으로 전을 부치거나 만두를 빚는 집도 많았는데 꿩 요리는 이북과 강원도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차례나 제사상에 비늘 없는 생선은 올리지 않고 보통 민어. 조기, 도미를 올리고 대구포나 명태포를 함께 올리는 가정도 많고 해안가에 근접한 지역에서는 우럭 자반도 제수용품으로 많이 쓰인다.

모든 양념에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 게 전통이고 옛날에는 마늘은 귀신을 쫓아낸다는 이유로 마늘양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의 뱀파이어도 십자가와 마늘을 두려워하고 한국 귀신도 마늘을 싫어한다고 하니 귀신의 습성은 동서양이 꼭 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에 마늘양념은 맛을 내기 위해 다 쓴다.

차례 상에는 전이 빠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소고기 안심이나 등심을 얇게 저민 육전, 다진 고기로 전을 부치는 동그랑땡과 생선살로 부치는 어전이 기본이고 대부분 어전에는 시중에 파는 명태살이나 대구살을 쓰는데 고급 어종으로 민어나 도미살을 이용해 전을 부치면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채소나 버섯을 이용한 부침개는 지역이나 가정마다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채소의 색감을 살려 예쁘게 부친다.

간단하게 보여도 전을 예쁘게 부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요리를 좀 한다는 사람도 전을 예쁘게 부치는 것은 어렵고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며 타지 않게 약 불로 하나하나 부치려면 정성도 많이 드는 음식이다.

채소는 일반적으로 고사리, 시금치와 숙주나물을 기본 나물로 하지만 초록색 채소는 다른 나물을 쓰기도 하고 나물 양념은 고춧가루는 넣지 않고 짜지 않게 무친다.

갱()으로는 소고기로 국물을 낸 소고기 뭇국을 많이 올리고 소고기 미역국을 올리기도 한다.

설날에는 떡국이나 만둣국을 주로 올리지만 대부분 차례나 제사상에 올리는 탕은 소고기 육수를 전통적으로 사용한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시집을 잘 간다는 말이 있듯이 예전에는 집에서 떡도 만들었지만 요즘 아파트에 살면서 떡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다 보니 명절 떡은 떡집에서 사는 가정이 많고 전문가가 만드는 떡이 모양도 예쁘고 맛도 더욱 좋다.

옛날에는 명절 선물로 청주가 빠지지 않았는데 제주로 청주를 많이 썼기 때문이다. 대부분 맑은 청주를 제주로 쓰지만 직접 담근 과실주나 귀한 안동소주를 쓰는 가정도 있고 고인이 즐겨 드시던 술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막걸리와 맥주를 제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제사음식의 양념은 설탕과 고추 가루는 사용하지 않고 간장도 조선간장과 전통적인 기본양념만 쓰기 때문에 맛을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옛날부터 오랜 경험이 있는 어머니와 큰 며느리만 제사음식의 양념을 할 수 있었다.


숙련된 손맛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이 명절 음식이고 준비에서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에 명절증후군이란 신종질환이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업주부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엄마, 아빠 모두 직장에 다니는 시대에 부모님 고향에 가는 여정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그야말로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음식 장만을 하는 가정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니 명절을 지내지 않는 집이 점점 늘어 가고 있다.

그냥 지나기 서운하니까 의무적으로 부모님께 돈만 송금하고 해외여행 가는 문화가 생긴 지도 오래됐고 인터넷에서는 명절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일요일에 교회에는 가지도 않는 사람이 종교가 기독교라 제사는 못 드린다는 가짜 신자도 예전에는 많았지만 요즘 명절 연휴에는 여행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많이 한다고 한다.

사회가 바쁘게 변하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는 이유로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서 편한 것만 좋다는 세상은 전반적인 대중의 정서가  변하는 세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고유한 한국의 문화가 세대가 바뀌면서 소멸되는 현실이 안타갑기만 하다.

시대가 변하면 생활관습과 문화도 함께 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아무리 새로운 게 좋다 해도 새로운 것은 과거를 통해 나오는 법이고 새로운 가치가 기존의 가치를 무너트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전통이란 형식이기보다는 가치를 부여한 관습이 전래된 문화이므로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는 조화 속에서 공존해야 하며 역사가 깊은 고유한 문화는 세대를 이어 계승되어야 한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좋은 계절 가을에 새로 수확한 음식을 가족이 함께 나누는 추석은 소중한 축복이고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 가족과 함께 희망을 공유하는 설날은 삶의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여명의 축제이다.


이전 26화 잔치상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