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는 거리를 걷다가 모르는 사람하고 시선이 마주쳐도 가벼운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흐뭇한 모습이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아침이 된다.
집에서 출발해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이름 모르는 사람들과 적어도 세 번 이상 인사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서로를 기분 좋게 만드는 간단한 인사는 진정한 반가움의 표현이고 3초 이상 걸리지 않는 간단한 예절이다.
이처럼 짧은 3초의 미소가 상쾌한 활력을 주는 순간이 되고 전파되는 긍정의 효과를 만든다.
인사와 칭찬이 습관화된 사회여서 남을 위한 배려는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매너로 자리를 잡았고 어느 장소에서나 노인과 여성에게는 양보를 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자리에서 눈총을 받거나 싫은 소리를 듣는 경우도 가끔은 볼 수 있다.
동선이 같다면 낯익은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는 것을 시작으로 친구가 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친구나 직장동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들갑을 떨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감정에 솔직한 이유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 예정에 없는 축하를 받게 된다.
좋은 일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얘기를
실감하게 되는 흐뭇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습관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다.
어찌 보면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냉혹한 환경에서 살지만 사람을 대하는 좋은 예절이 문화로 자리를 잡은 현상이고 잠시라도 남을 배려하는 미덕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에서 길을 가다가 누구와 눈을 마주칠 때 웃으면서 인사하면 저 사람 왜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빨리 자리를 피하기 일쑤이고 나이 드신 분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지하철에서 웃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도 사라진 지 오래됐으며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에게 친절을 베풀면 뭐 부탁할 게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보통이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보면 이해관계가 있는 사이로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위안을 해보아도 친절과 배려가 희박해진 사회가 돼버린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개인주의가 철저한 서구사회에서도 매너와 배려하는 습관이 생활화되고 부유층의 기부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된 현실에 비하면 역사적으로 혈연과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살아온 우리나라의 정서가 너무나 삭막해진 것은 사실이다.
1950년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불과 50년 만에 선진국 대열로 진입했고 그 후 20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경제는 세계 11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급속한 비약적 발전과정에서 혼란과 무질서를 겪으면서 삶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된 시대적 상황도 가치관 정립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지만 왜곡된 가치관이 확대되어 인식의 오류가 되고 자신의 이익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경계하는 이기주의를 양산하다 보니 우리들의 정서까지 피폐된 사회적인 현상이 확산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흔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돈하는 경향이 많은데 자기만 생각하고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란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유일한 개인의 가치를 우선으로 존엄과 개성이 존중받고 개인을 하나의 단위로 분류하는 개념으로 종교, 정치, 사회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사상이지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종과는 철저히 구분되는 것이며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개인주의가 아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이익 외에 자신과 다른 것은 배척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들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생각과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명백한 이기주의이며 개인주의의 의미와는 개념이 다르다.
옳고 그름의 차이가 이분법적 논리로 구분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복잡 다양한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판단으로 확대되고
‘남들도 그러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그릇된 주장으로 발전하여 이기주의를 양산한다.
세상이 이러니까 잘못된 것이지만 정당하다는 판단을 하고 이런 경우가 있으니까 저런 경우는 당연하며 내가 번 돈 내가 쓰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는 생각처럼 잘못된 합리화가 모여 인식의 오류를 형성하며 전염병처럼 확대되어 가는 것이 우려해야 될 세태이다.
애들이 주먹질하며 싸워도 말릴 생각 안 하고 노약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모른 척 지나가면서 남이 하겠지 하고 신고조차 안 한다.
이러한 현상은 불신을 조장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사회를 만든다.
언제부터인지 포상금 받기 위해 무작위로 아무나 고발하는 악습이 생겼다.
같은 동네 살면서 이웃을 고발해서 신고한 대가로 포상금을 받는 경우가 흔하고 심지어 파파라치를 양성하는 학원까지 생기다 보니 쓰레기 버린 것부터 교통법규위반 현장, 사설학원을 노린 학파라치, 건물 방화문 안 닫힌 것까지 찾아내 사진 찍고 신고하는 종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포상금 사냥이 직업이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공무원이 단속해야 할 일을 효과적인 측면만 강조하면서 생겨난 제도지만 말 그대로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인간성은 갈수록 피폐되고 있다.
사실 파파라치는 서구사회에서 유명인이나 스타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이나 공개되지 않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방송국이나 언론사에 파는 비열한 행위이고 그것도 사주지 않으면 팔 수없는 거래행위이지 정책이나 제도로 만든 법이 아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뉴스는 세계인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만연한 불신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각박한 사회에서 미소와 배려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나 부정적 측면을 접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어 편견으로 고착되기도 하고 편견으로 굳어진 사고는 인지적 오류(cognitive distortions)를 범하게 한다.
즉 자신이 듣거나 목격한 소수의 상황이 통계와 확률 없이 대부분 다 그렇다는 검증 없는 논리로 잘못 인식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오류(cognitive distortions)란 사람이나 집단 또는 사회현상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여러 유형의 논리적 오류를 말하는데 말 그대로 잘못된 생각을 인지적 오류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생활하면서 엄청난 정보를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받는데 모든 정보가 뇌에 저장되지 않고 제한된 정보만을 저장한다. 제한된 정보란 인지능력을 통해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은 무시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선택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해석하게 되는데 관심 있는 정보와 선택된 정보를 해석하는 뇌의 기능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을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학습과 경험을 통해 타인이나 상황을 보며 정형화된 틀을 만들게 되는데 생각이나 행동의 정형화로 조직된 패턴을 도식(schema)이라고 하며 도식(schema)이란 여러 종류로 설명할 수 있지만 역할에 대한 도식은 엄마, 아빠, 친구와 같은 역할과 관련된 기준에 따라 사람을 역할별로 판단하고 기대하는 것이며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도식은 교수나 박사를 연상하면 백발에 돋보기를 쓴 점잖은 모습이 떠오르고 장교나 경찰을 생각하면 제복을 입은 단정한 모습이 연관되는 정리된 생각을 말한다.
뇌의 기능에서 도식(schema)은 쉽고 빠르게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고정관념(stereotype)을 형성하여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는 작용도 한다.
특히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 집단의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분별 개인의 다른 특성은 배제되어 쉽게 인지적 오류를 형성하게 되며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신의 잘못되고 편향된 생각과 행동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즉 사회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세태를 자주 접하고 사건과 사고를 방송과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듣고 보게 되면 사회의 좋지 못한 단면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양극화된 사회현상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지고 현재의 부정적 세태를 당연한 현상으로 판단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 한 부분의 단면이고 햇빛이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듯 사회 한 구석의 어두운 모습이기를 바라지만 이미 만연해 버린 변질된 정서가 인간의 기본적 소양마저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감출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고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으며 법이란 정직한 대다수를 위해 만든 것이지 못된 인간을 처벌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었고 긍정의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불변의 진리이다.
첨단과학문명을 만든 자본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경제적 성과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지만 인간의 문명은 결코 과학과 경제, 유형의 가치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세계는 언제나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인간을 위해 발전할 것이며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엇으로도 퇴색시킬 수 없는 강력한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때로는 이성이 마비되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가 말해 주듯 어지러운 사회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지적 오류란 말 그대로 생각이 잘못된 것이므로 생각을 조금만 바꾸려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초가 되고 동기가 된다.
인식이나 개념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신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에서 가족을 생각하고 친구, 이웃을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사회를 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 있는 기초가 되고 나에서 우리로 생각이 바뀌면 사고가 전환되는 것이며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함께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릇된 현상이 필요악으로 자리를 잡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야사 일 뿐 세상은 빛에서 생겨났고 빛으로 만들어졌다.
부정의 세태가 사회를 바꿀 수는 없으며 언제나 유동적인 삶의 기류가 향하는 곳은 함께 사는 밝은 세상이다.
긍정의 사회가 미소를 만들고 미소는 세상을 밝히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