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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Jan 24. 2022

느린아이

있는 그대로 보기

 얼마 전 동생과 홍대의 한 술집에서 나눈 대화로 시작하려 한다. 나의 지난날에 대한 고백이랄까.


 "세상 모두가 나 같은 줄 알았어."


 정말 바보같게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모두 다르다는 걸. 그 다른 사람 중에 엄청나게 다른 사람이 동생이라는 것을.  


 동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느린아이'다. 동생은 뭐든 느리다. 아침에 잠을 깨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10시에 눈을 뜬다고 하면 자정이 넘도록 멍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일어나자마자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물어보니, 단순히 잠 깨는 중이란다. 행동도 당연히 느리다. 외출을 준비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일단 씻으러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말이 되는 워딩인가 싶은데 정말이다. 씻는데 30분, 화장하는데 1시간. 옷입는데 30분. 아 이렇게만 해도 3시간이 넘어가는구나.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3시간이 넘어갈 때도 많다. 밥도 꼭꼭 씹어 먹는다. 동생 덕분에  1시간 넘게 식사하는 사람을 난생처음 보았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후식을 먹고 소화시킬 시간에 동생은 아직 밥을 먹고 있다. 생각 또한 느리다. 사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고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갑자기 대화를 할 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버퍼링이 걸리고, 재부팅 시간이 10분 넘게 드려나. 때문에 공통적으로 논의해야 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미리 주제를 알려주고 대화날을 잡아야 한다.

 

 반면 나란 사람은 뭐든 급한 사람이다. 눈뜨자마자 활동하고, 준비시간은 30분이면 충분히다. 밥 먹는 시간도 15분이면 끝나려나. 눈치도 무진장 빠른 편이라 상황 파악 끝내고 눈치 없는 척을 할 정도니까.


 그렇기에 처음에는 동생이 느린 게 아니라 여유로운 사람인 줄 알았다. 아직 학생이고 시간이 많으니까. 잠도 단번에 깰 수 있는데 2시간 동안 침대에 있는 것이고, 준비도 빨리할 수 있는데 여유롭게 준비하는 것이고, 밥도 빨리 먹을 수 있는데 느긋하게 먹는 것이고, 대답 또한 바로 할 수 있지만 신중히 생각하느라 천천히 대답하는 줄 알았다.   


 평소에는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예약시간에 맞춰야 할 때는 속이 터졌다. 가령 기차시간 같은 거. 동생에게 1시간 전에는 꼭 나오라고 말을 해놓으면 얘는 45분 전에 나와서 기차 시간이 5분도 안 남게 도착할 때가 몇 번인가. 나는 식당 예약 시간에 맞춰 준비 다 해놓고 30분 넘게 기다리며 식당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한 것은 또 몇 번인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나는 언제부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빠르게 할 줄 알면서도 여유부리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동생이 '여유부리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버리니 더욱 화가 났다.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나는 초조해졌기에. 왜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건지. 그 시간들 속에서 초조해하는 나 스스로가 짜증이 났다. 그 초조함을 모두 동생 탓을 하고 싶었다. 탓하기는 쉬웠다. 실제로 동생이 늦은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냥 '느린' 아이였다. 특별히 깨달은 계기는 없다. 2년을 넘게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타고난 성격이라는 것을. 선택적으로 느리지 않다는 것을. 동생이 '일부러 그런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여유부린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가 나 같다'라고 생각해서 나온 결괏값이라는 걸.


 그래서 동생에게 고백할 수 있었다. 세상 모두가 나 같은 줄 알았다고. 그동안 내 기준으로 봐서 미안했다고. 내 초조함이 너에게 짜증으로 전달되어 많이 서운했겠다고.


 미안, 동생아. 이제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려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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