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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Feb 04. 2022

시작은 집안일이었는데

어쩌다 임플란트까지 하게 된거지

 분명히 그 싸움의 시작은 집안일이었다.


 재작년 여름이었다. 그때쯤에 우리는 하루에 한번은 기본이오. 아침, 점심, 저녁을 연달아 싸운적도 있었다.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거의 싸움은 이런식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왜 안 하냐?'라고 물으면, 동생은 '하려고 했다'라는 말로 방어를 하다가 '알아서 할 건데 왜 뭐라 하냐'는 동생의 말에 '알아서 했으면 이런 말도 안 했지'라는 나의 역공으로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말싸움을 했다.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나.

1. 본인이 먹은 설거지는 바로 하기

2. 빨래 널기는 동생이, 접는 것은 내가

3. 청소기는 일주일에 두 번, 번갈아가면서 하기

4. 쓰레기는 내가 정리해서 현관에 두면 동생이 내놓기

5. 화장실과 가스레인지 청소는 주말에 돌아가면서


 아침에 먹은 설거지가 점심에도 개수대에 있었고 저녁에도 있었고 다음날 아침까지 있는 상황이 허다했다.

 그러면 내가 물었다.

 "왜 안 하니?"

 이다음은 예상이 되리라.


 동생도 동생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집안일에 대한 태도가 나와 달랐다.

 8년을 혼자 살았던 나는 집안일에 최적화된 상태였으나, 반대로 동생은 부모님과 같이 살다 올라와서 그전까지 집안일이라고는 고작 자기방을 치우는 정도였으니 거의 집안일을 안 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동생은 동생 나름 집안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도와주는 상태'로.

 본인이 사는 집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동생이 집안일을 하더라도 0.5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 0.5는 내가 채워 나는 1.5를 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현재 스코어 0.5 : 1.5

 1:1로 만들어야 했다.


 아침에는 설거지로 싸우고, 점심에는 청소기로 싸우고, 저녁에는 쓰레기로 싸우고.

 반복해서 잔소리하는 나도 지치고, 반복해서 그 소리를 듣는 동생도 지치고...


 그렇게 서로가 지쳐있던 어느 날.

 그날은 뭔가 느낌이 싸하더랬다.


 막내는 성격이 아주 유순한 아이로 조금만 목소리가 높아지면 옆으로 다가와 한 발로 소리내는 사람을 툭툭치곤 했다. 그래도 안되면 동생과 나의 가운데서 더 큰소리 내는 사람을 쳐다보다 그래도 안되면 몸을 떨며 구석으로 사라졌다. 막내는 진작 어딘가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동생은 본인의 힘을 과시하며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때릴 수도 있다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이런 소리를 듣고 살 수는 없다.


 내가 먼저 동생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동생도 나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우리의 첫 육탄전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정말 죽기살기로 동생의 머리채를 당기며 다른 손으로는 동생을 마구 때렸다. 여기서 물러나면 나는 이 집에서 못 산다는 각오로. 동생도 나의 머리채를 잡은 상태로 나에게 마구 발길질을 했다. 명치를 세게 맞아 배가 아팠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동생의 발길질이 멈췄다. 나는 내가 이겼다는 생각에 동생을 더욱 몰아붙이려 했는데, 아... 뭔가 이상했다. 동생이 흐느끼며 바닥을 더듬더듬 짚어보는 것이었다.

 신경치료를 하고 있던 동생의 앞니가 부러진 것이다.


 몸싸움 좀 해봤던 동생은 얼굴을 피해 나를 때렸지만, 처음 몸싸움을 하는 나는 몸싸움에도 나름의 배려가 있다는 걸 몰랐다.


 동생은 부러진 이를 들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이를 부러지게 한 장본인인 나는 한순간의 죄인처럼 울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다음날 우리는 같이 압구정에 갔다. 동생의 임플란트를 하러.

 어제까지 나를 죽일 듯이 때리던 년이 오늘은 내 손을 꼭 잡고 아이처럼 대기석에 앉아있다. 다른 손에는 부러진 이빨을 들고. 자그마한 양 손이 모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동생의 이빨 진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어찌 된 일이냐고. 동생은 부러진 앞니를 씨익 보여주며 원래 약했는데 밥먹다 빠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귀엽던지.


 이런 걸 두고 그런 말을 쓰는 걸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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