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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Feb 16. 2022

산책이 뭐라고  

제일 중요한 것

  정말 산책이 뭐라고 내가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우박이 내려도, 심지어 저녁에 술을 마시고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산책을 해야 했다. 술마시고 아침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아도 산책은 나가야 했다. 나와 동생은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나눠 한 타임씩 강아지 산책을 하기로 약속했다. 아침이 되었던 저녁이 되었던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때론 동생에게 부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탁을 한번 들어주곤 잔소리가 오만배로 돌아왔다. 아, 치사해서 내가 한다. 그렇게 다짐해도 부탁할 일은 또 생기고, 그런 일이 생길수록 나의 스트레스는 늘어갔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며 나름 공부를 했다. 굳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핸드폰으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었다. 유튜브는 내 공부를 손쉽게 도와주었다.


 Q. 강아지 처음 키울 때?

 Q. 강아지가 좋아하는 것

 Q. 보호자의 의무


 뭐 등등.


 유명한 프로그램인 세나개와 개는 훌륭하다의 편집본도 보고, 그 밑에 댓글들도 보고. 보듬TV에서 개인 상담이 올라온 콘텐츠도 보고.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들을 모두 섭렵했을 때 나오는 결론이 바로 산책이었다. 행복한 강아지는 피곤한 강아지라고 했다. 강아지가 피곤해지려면 산책을 빡세게 하는 것. 나의 공부의 결괏값으로 인하여 우리의 산책이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실외배변견이 되어버렸다. 초반에는 실내에서도 싸더니 한 달이 지나가자 막내는 아예 밖에서만 대소변을 보았다. 한 번은 여름에 장마로 몇 날 며칠 비가 쏟아지던 날. 동생과 나는 결심했다. 이런 날 나가는 건 무리라고. 막내가 실내에서도 볼일을 볼 수 있게 이참에 교육하면 어떻겠냐. 더군다나 막내는 다리가 짧아서 우비를 써도 배에 다 묻곤 했다. 우리는 결심했고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배변패드를 집안 곳곳에 깔아놓고 막내가 집에서 싸면 바로 간식을 줄 요량으로 틈틈이 배변패드를 체크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런데 웬걸. 막내는 배변패드에는 관심도 없고 배가 빵빵한 상태로 문 앞에서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소리 없이 앉아있는 그 모습을 보자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몹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둘째 날 밤이 되자 막내는 낑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다 애 죽겠다 싶어 결국 우리는 3일째 되던 날 막내를 들고 산책을 나갔다.

 이렇게 우리의 야심 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다시 산책의 굴레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뒤로 '그깟 산책이 뭐라고. 하면 되는 거지. 얘 죽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생각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때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다녀와서 곤히 자는 막내를 보면 세상 뿌듯하다.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산책이다.

산책 중 신난 막내
산책 후 뻗은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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