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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무개 Sep 24. 2023

엄마이야기 02

  2017년 5월 엄마가 갑자기 계곡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날은 아빠가 내게 농약을 치겠다고 넌지시 눈치를 주고 농약을 사러 나갔던 때였다. 농약이고 뭐고 곧장 차를 몰고 나서는데 하필이면 조곡다리에서 아빠 차와 마주쳤다. 나는 못 본 척 불편한 마음을 안고 앞으로 내달렸다.

  점심을 먹지 않고 나온 터라 계곡 근처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과 꼬마김밥을 간단히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넓은 마당의 평상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과자도 먹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근처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무리와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담배를 피우던 여자의 모습, 불쾌한 담배 냄새까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엄마는 빛 드는 곳에서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평상에 누워 햇빛을 쬐던 엄마의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행복해 보였다. 나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지루한 나머지 엄마에게 얼른 계곡에 가자 재촉을 했다.

  다시 차를 몰고 산 깊숙한 곳까지 한참을 들어가니 계곡이 나왔다. 엄마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동안 나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과 과자 한 봉지를 샀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갔음에도 가격은 너무 바가지였다. 아무튼 엄마는 그때도 메로나였던 것 같다. 메로나 아니면 비비빅을 좋아했던 엄마였기에 둘 중 뭐라도 있으면 고민할 것 없이 집었던 나다.

  5월치고는 꽤 더웠던 날이었는데, 산골짜기는 너무도 시원했고 계곡물은 뼈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햇빛에 데워진 따뜻한 바위에 나란히 앉아 물속에 발을 넣고 엄마는 아이스크림, 나는 봉지과자를 뜯어먹었다. 잊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그저 계곡물에 발을 담갔을 뿐인데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는데, 하얗고 앙상한 다리에 자꾸 눈이 가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우리는 고즈넉한 평화 속에서 잠시나마 깊은 시름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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