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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의 어린이날

산이 가르쳐준 삶

by 하이브라운

산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내게 산은 그저 산이로다.


좋은 기회(?)로 교회에서 지리산을 가게 되었다.

초중학생 20여 명과 성인 10여 명이 함께하는 산행이 계획되었다.

마침 산에 오르는 날이 어린이날이다.

꿀 같은 5일의 연휴 중 3일을 등산 일정에 썼다.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근육통을 안고 좋은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산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라산, 지리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유명한 산을 계절마다 다녔다.

신기하게 산행 전후 심신의 변화는 늘 같다.

걱정-기대-후회-감격-고통-추억

산행을 신청하고 내 체력으로 왕복이 가능할지 걱정한다.

등산 초반에 산의 아름다움을 보며 기대가 가득해진다.

절반 정도 올라가면 풍경이 보이지 않고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며 왜 신청했을까 후회가 몰려온다(정상이 멀리 서라도 보일 때까지 후회는 계속된다.)

정산에 올라 사방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보면 감격이 밀려온다.

당일 저녁부터 3일 정도는 근육통에 시달린다.

생각날 때마다 산행과 풍경 사진을 넘겨보며 추억한다.


5월 4일(일)

오후 4시에 서울시 송파구에서 경남 산청군으로 향했다. 내 차에는 초등학생 남자 4명이 함께 탔다.

4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4시간 동안 초등 남자아이들의 에너지,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지는 시너지를 경험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다음날 새벽 3시 30분에 기상을 해야 했기에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바로 취침했다.


5월 5일(월), 어린이날

새벽 3시 30분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4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중산리 주차장에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코스다.

초등학생들이 많아서 성인들의 배낭에는 짐이 무척 많았다. 기본 6통 이상의 생수와 본인 및 아이들의 아침식사, 점심식사, 간식, 구급약품 등의 물품들을 나누어서 배낭에 담았다.

유명 산악인의 정상 등정 소식을 듣게 된다면 이제는 셰르파를 먼저 떠올리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할 것이다.

헤드 랜턴을 켜고 새벽 산을 밝히며 등산을 시작한 지 7시간 정도 지나서 정상인 천왕봉에 도착했다.

봄의 기운이 가득한 지리산은 아름다웠고, 비가 내릴 듯 말듯한 날씨는 서늘함을 주어 감사했다.

다시 6시간 정도를 걸어서 무사히 하산했다. 좁쌀만 한 우박이 떨어졌고, 비가 조금 내렸지만 안전하게 잘 내려왔다. 숙소에 도착하여 맛있는 흑돼지 오겹살을 저녁으로 먹고 꿀같은 잠을 잤다.


5월 6일(화)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을 일으킬 수 없다. 잠을 충분히 자서 피곤함은 사라졌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작년 일본 여행 때 사온 샤론파스를 챙겼는데 일본 국민 파스의 효능을 믿어봐야겠다.

짐을 챙기고 숙소 주변에 있는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변에 수제 햄버거 가게가 몇 개 있던데 지리산과 햄버거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맛있게 잘 먹었다.

이틀 전에 함께 탔던 용맹한 초등 남아 4명과 함께 5시간을 운전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애들은 산에서나 차에서나 지치지 않는다. 그저 졸음운전을 예방해 준 것에 감사해야겠다.



이번 산행은 느끼는 게 참 많았다.

작년 말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처음 맞이한 산행이었다.

역시 글을 쓰면 일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감사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읽고 쓰는 행위의 소중함을 먼저 깨달았다.


30여 명의 인원이 2박 3일을 함께하는 산행이었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숙소와 여러 번의 식사, 예산 계획, 안전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공동의 짐을 싸고, 분배하고, 모든 일정 후에 뒷정리까지 해야 한다.

오히려 산행 시간이 가장 편할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준비와 마무리가 있다. 멋진 결과의 일이라면 준비와 마무리에 더욱 큰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늘 준비와 마무리의 과정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잊지 말자


등산은 늘 시작하는 순간까지 고민과 주저함이 있다.

이번은 연휴니까 좀 쉬고 다음번에 갈까?

체력적으로 더욱 준비되면 사뿐하게 다녀올까?

다른 일도 그렇지만 고민이 많고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더욱 큰 것을 준다.

쉽게 선택한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많았다. 반면에 좋은 게 확실하지만 주저하고 어렵게 선택했던 것들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좋은 것들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것도 등산이 삶과 비슷하다. 모든 것에 조금씩 대비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하루를 살아간다.

비가 올지 말지 몰라서 우비를 준비하고

날이 추울지 더울지 몰라서 반팔 티와 패딩을 함께 준비하고

아프거나 다칠지 몰라서 의약품을 준비하고

갈증과 배고픔에 대비하여 물과 먹을거리들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등산 중 부상의 대부분이 하산할 때 발생한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생기는 집중력과 힘이 하산할 때는 많이 부족하다.

모든 일에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하다.

오늘 산행의 멋진 추억은 깔끔한 마무리로부터 온다.

다음 산행 또한 좋은 마무리가 있어야 기약할 수 있다.


여러 느낀 점들을 뒤로하고, 맑은 공기와 푸르름을 12시간 보고 나니 몸에는 비록 통증이 남았어도 마음은 매우 상쾌해졌다. 다음 산행을 결정할 때 다시 주저함이 있겠지만 또 산행 후기를 쓸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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