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혼식’에 대한 단상

결혼식을 다녀와서

by 하이브라운

결혼식을 다녀왔다. 동료 교사의 결혼식이었다.

미혼의 교사들이 많은 학교라 결혼식이 참 많다.

모두가 다른, 다양하게 진행되는 결혼식들을 보게 된다.

15년이 된 나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결혼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2010년 1월 폭설이 내리던 날 결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1년을 마치고 한 결혼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직장에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1년밖에 함께 지내지 않았는데 방학 중에 치러지는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말이 그때는 너무도 어려웠고,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았다.

사고는 결혼식 전 날 일어났다. 매우 가깝게 지냈던 남교사 선배님들 3명에게만 청첩장을 드리고 결혼 사실을 알렸었다. 그중 한 분이 교감선생님께 결혼식에 어떤 교통편으로 가실지 여쭙는 연락을 드린 것이다.

...

결혼식 전날 밤에 교감선생님께 30분, 교장선생님께 30분을 혼났다.

마치 차례대로 혼내시려고 전화 순서도 두 분이 정하신 듯했다.

표현은 혼냈다고 했지만 사실 두 분 모두 내게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아시고 인생을 가르쳐준 통화 내용이었다.

1년간 젊은 혈기에 내 일이 아니더라도 힘차게 뛰어다니며 돕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을 늘 예쁘게 봐주셨던 분들이셨다. 그러니 더욱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상연락망으로 전날 밤에 결혼 소식이 교직원들에게 전해졌고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과 결혼식이 어떤 면에서는 삶의 축소판 같다.

많고 많은 준비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 연약함, 인간성, 상대에 대한 배려 등 수많은 것들이 나온다.

결혼식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 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이다.

은행에서 통장을 하나 개설할 때에도 여러 가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한다. 집을 계약할 때, 휴대 전화를 개통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결혼식은 더욱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서약하는 의식이 돼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 스드메는 어디서, 어떤 규모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 신혼집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 결혼식 하객은 어느 정도 일지

- 결혼 식순은 어떻게 구성해야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을지 등.

물론 위의 내용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항목이 덜 중시되는 것 같아서 아쉽고, 내 결혼 준비과정 또한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결혼식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 신부의 아버지께서 신랑과 신부의 행복한 앞 날을 바라며 편지를 읽어주셨던 장면이었다. 결혼식 중간에 아버지의 편지 순서도 좋았지만 그 내용 중에 "언제나 부부가 우선이 되었으면 한다. 부모는 너희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녀 된 자로서의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다오." 나와 같은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던 과학선생님의 편지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다.

- 친한 동료의 결혼식 날에 멀리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느라 참석하지 못하는 분이 계셨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커서 전날 밤에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여 신랑의 집 근처로 오셨다. 흰 봉투에 넣은 축의금과 축하 인사를 해주셨다. 계좌로 보내셔도, 다른 분께 부탁하셔도, 복귀한 다음에 주셔도 되는데 그분의 말씀은 꼭 만나서 직접 축하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받았던 가장 진심 어린 축하 중의 하나다. 결혼식 날에 학생 체육 대회가 있어 일주일 전부터 전남에서 합숙 훈련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전남에서 서울까지 오셨던 동료 체육선생님. 15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만나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결혼이 부부 서약을 하는 의식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결혼의 준비 과정은 서로의 사랑을 더욱 곤고하게 다지는 과정이고 결혼식은 다져진 사랑을 증인이 되어줄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무슨 일이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시되고 부차적인 것들이 주가 될 때 어려움이 생기고 아름다움이 훼손된다.

결혼식이라는 가장 축복된 날은,

하객들의 많은 축복 속에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의 사랑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으로 기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리뷰) 팀 켈러의 일과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