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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러 담아 꽉 채운 하루

by 하이브라운

5월 13일(화) 마지막 일정으로 글을 쓴다.

(쓰다보니 수요일이 되었다.)

길고 긴 하루였고, 보람찬 하루였다.

매일을 오늘처럼 보낼 수 있다면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을 돌아보며 생각들을 정리한다.


보직교사(학교의 여러 부서의 부장)를 맡아 부담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내 학급의 담임교사가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로 3일간 출장을 가는 날이다.

3일간은 임시담임 역할 및 풀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출장을 떠나기 전에 응원과 도움받을 선생님들을 위한 커피를 픽업해야 해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학생 관련 사항을 인수인계받고, 등교지도부터 하교까지의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다.

등교 후 점심시간을 포함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6시간의 수업을 했다.(중간의 한 시간은 부서업무를 빠르게 처리했다.) 학생들을 하교시키니 3시 40분.

바빠서 미루었던, 교무실에서 내 물품을 찾아오는 길에 화단에 나무를 옮겨 심고 계시는 교감선생님을 뵈었다.

"좀 도와줘~"

어찌 바쁘다고 지나칠 수 있으랴. 군대에서 익힌 삽질로 흙을 파고, 나무를 구덩이에 고정시킨 후에 흙을 덮고 물을 뿌려 고정시켰다.

흡족해하시는 모습에 포인트가 쌓인 느낌이다. 내일부터 올리는 결재가 빨리 처리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니 퇴근할 시간이다.

“쏜살”이라는 단어를 완벽히 체감했다.

오늘 정말 제대로 일 한 느낌이다.

뿌듯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찾아온다.


귀가하여 일찍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으니 나른해진다.

여기서 무너지면 오늘 하루가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헬스장으로 향했다.

땀을 흘리고 집에 들어오니 식곤증보다 더 심한 것이 다시 찾아왔다. 안돼! 문 안열어줄거야~~

아들과 프로야구를 시청하면서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하며 부자의 정을 나눈다.

야구장에서는 묵언수행을 하면서 집에서는 우렁차게 삼성의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이 참 특이하다.

덕분에 잠이 확 깼다.


피곤하고 바쁠 때, 글쓰기만큼 게을러지는 것이 독서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읽고 쓰는 습관이 생기도록 노력하는 지금이라 단편 소설을 한 편 읽었다. 최진영 작가의 '썸머의 마술과학'. '구의 증명'으로 알고 있던 작가인데 단편 소설도 참 좋았다.

새벽에 배달 온 일간지의 기사를 훑어보고(보고 싶은 것만), 내일 바리스타 필기시험을 대비해 벼락치기로 문제의 정답들을 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쓴다.




6시에 일어나서 글을 마무리하고 잠 자리에 들면 12시가 넘을 것 같다.

18시간의 알찬 하루를 보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는데 사람마다 하루를 잘 보내는 기준이 다르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하여 하루를 보낸다면 내 기준에서는 잘 보낸 것이다.

오늘이 1년 중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앞으로 살고 싶은 하루가 이런 날이다.

바쁘게 다양한 수행을 하여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감사와 기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 조금 일찍 일어나 스타벅스에 들러 출근했던 작은 수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아침을 선물했다. 4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담임교사에게도, 늘 곁에서 도움을 주려는 착한 교사들에게도 작은 기쁨이 되었다면 이런 수고쯤이야.

2. 하루 종일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등교부터 식사와 하교까지 함께 해주신 분, 교실에서 혼자 심심할까 봐 쉬는 시간마다 와서 조잘조잘 말 걸어 주시는 분, 수업 힘들면 본인 수업이 없을 때 조금 봐주신다는 분, 전화로 괜찮은지 몇 번을 물어보시는 분 등. 모두 MZ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생각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3. 초임부터 담임만 14년을 하고 작년부터 부장을 맡으면서 부담임을 하고 있다. 역시 난 담임을 좋아하고, 내게 잘 맞는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학생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참 좋다. 담임 습관이 깊게 남아있어 하마터면 오늘 활동 사진을 학부모님께 전송할 뻔했다.

4. 귀가하여 내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아내 또한 업무와 육아, 가정 일로 바쁨에도 불구하고 늘 이해하고 응원해 줌이, 오늘처럼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를 보내니 더욱 크게 다가온다. 방학과 주말은 더욱 헌신적으로 보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오늘 읽었던 단편 소설 '썸머의 마술과학'에는 "겨울이 이렇게 포근하면 다가오는 농사가 흉작이다"라는 옛말이 인용되었다. 하루가 비록 바쁘고 지치게 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이런 하루들이 모여서 내일의 풍작을 기대하게 한다. 오늘 하루를 지내보니 겨울이 매섭게 춥더라도 나의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다면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있어 감사한 하루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감사한 하루

정신이 육체에 승리하여 기쁜 하루


여러모로 좋은 하루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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