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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여 Aug 03. 2024

사랑 1

사랑은 ​

아버지 불치병에 어떤 노력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현실의 울타리 안에서 도리를 다하며 은밀히 죽음을 준비하는

자식의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식의 불치병에도 굴하지 않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마다 모두 불살라 버리는

아버지의 그것입니다.


사랑은 ​

간만에 찾은 고향집을 뒤로 하고 삶에 쫓겨

조만간 다시 오겠노라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기고 이른 아침 서둘러 떠나는

자식의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자식이 교통사고나 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깊은 주름 구부러진 등背하고 서릿발 성한 마당에 쪼그려 앉아 동구 밖으로 자식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드는

어머니의 그것입니다.



* 아리스로텔레스 《니코마코스》 8권 사랑(1) ''부모의 자식 사랑이 자식의 부모 사랑보다 더 크다.''


* 집을 떠난지 35년, 나는 부모님께 해 드린 게 별로 없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지방의 모 대학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얘길 듣고, 그저 형제들과 함께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아버지의 소생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고향집에 올 때면 하루라도 더 머물다 가는 것이 효도인 줄 알면서도 매번 일상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알면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머 결혼을 준비하는 딸을 볼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은 더욱 커진다. '자식의 부모 사랑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더 크다.'는 변명만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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