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나에게

왜 그렇게 생각이 많으세요?

by 탄고


회사 선배와 점심을 일찍 마치고 아무도 없는 회사로 돌아와 휴게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내게 선배 중 한 명이 대뜸 물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정말 대뜸 물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금방이라도 '저 사실 퇴사해요'라고

고백할 것 같은 표정의 내가 사실 생각하고 있던 건 '오늘 점심 엄청 더부룩하네 두 번 갈 곳은 못되겠다' 였기 때문이다. 진지한 인상이 주는 여러 장점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이다.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 재밌게 대화하던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이 진지해 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

고민 있어 보인다.

무슨 큰 일 혼자 떠안고 있는 것 같다.


살면서 많이 들은 표현들이다.


어느 날 심리상담을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자유롭게 글을 써와 주세요"

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을 주셨다. 회사에서 틈 날 때마다 출퇴근길 길마다 계속해서 이 질문만을 생각했다. 선배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선배, 선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요즘 누가 그런 걸 생각해 머리 아프게"

맞다. 저 말이 정답이다. 그 누구도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고민하며 나에 대해 고민하거나 적어보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해보려 하니 머리가 지끈 거릴 수밖에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슨 고민 있어요?" 건너편 책상에 위치한 동기가 물어왔다.

웃음이 났다. 또 그 질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있냐, 걱정 있냐. 그 순간 머리가 번쩍 하더니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서 거기에 이 단어를 적었다.


worrier


그래 나는 워리어다. 걱정과 싸우는 전사다. 학창 시절 숙제를 해오지 않아 교실 앞에

나의 패잔병들과 함께 엎드려 선생님의 매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나는 매사에 걱정이었고 불안해왔다. 그야말로 다가올 모든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나의 환경은 끊임없이 불안했던 환경들의 연속이었다.


자고 일어나 거실에 나와보니 부부싸움을 어떻게 한 건지 거실과 주방이 마치 중장비차가 집을 한번 치고 간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는 광경을 목격했고 어머니는 울며 나의 손을 붙잡고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도망치기도 하셨다. 집의 사업이 사기당해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감정은 늘 불안과 공포였다.

다가올 미래의 가능성 높은 위기들에 끊임없이 대비하고자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그게 비록 걱정하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일지라도 어쩌겠는가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


내가 배고프면 배에서 소리가 나듯, 나의 감정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럴만하기에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모든 마음의 문제는 나 자신이 인지하고 있을 때와 없을 때 큰 차이를 갖는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가운데 놓여 있었고 지금도 이것이 습관처럼 내게 남아있다. 그래서 늘 앞 날은 내게 불안이었고 그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이 두렵고 버거워 감정을 느끼는 대신 회피하고 그 자리를 많은 생각들로 채워갔다.

마음은 무엇으로든 채워져야 한다. 감정과 생각 둘 중에 하나로는 말이다. 나는 감정 대신 생각을 택했다.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것을.


이전 10화#11 내가 받은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