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수많은 말들이 두려웠던 날들에 대하여
부장님으로부터 지난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PPT로 만들어오라고 지시받은 건 지난주였다. 지시를 받은 사원들은 어떤 내용을 PPT에 담을지 워드나 한글에 먼저 자유롭게 적어보기도 하고 어떤 사원들은 PPT를 잘 꾸미기 위해 새로운 탬플릿을 찾아보기도 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다른 선배들이 만들었던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을 훑어보며 괜찮았던 템플릿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던 차였다. 조용한 회사 안에서 한글타자 대회라도 열린 것처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사무실 안에 퍼지고 있었다. 게임에 관심이 많은 나이기에 어느 한 사람이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린 것도 이때였다. 수많은 키보드 타자 소리 중 유독 더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소리가 귀에 꽂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키감이 마음에 들었거나 아니면 키보드에서 나오는 라이트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사실 어디까지나 그저 단순히 지난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소감문이었기에 템플릿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만들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다소 있는 내게 이런 작은 일조차 넘어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꽤나 힘든 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 이리라. 대충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 내용에서 너무 튀지 않게 글의 설명을 더해줄 그림은 무엇이 있을까?
아 그렇지 글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폰트다. 어떤 폰트가 좋을까. 글꼴 크기는? 색은?
소감문을 작성하는 사원들 모두 일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은 제각각이겠지만 작은 일이라도 부장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과 인정. 사람이 평생토록 갈구하는 가장 큰 마음을 꼽자면 이 두 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소감문을 작성하며 내게 들었던 가장 큰 마음은 흠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일을 맡긴 분의 직책이 높으면 높을수록 나의 실수는 더 공적으로 비판받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선임 선배가 시킨 일이야 실수를 해도 그냥 지적 한번 듣고 운이 좋다면 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장, 차장 더 나아가서 부장님이라면 비평을 듣는 마음 자세부터가 무거울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완벽주의자들이 공감하겠지만 그저 소감문에 불과한 PPT일지라도 제대로 해서 흠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와 그저 소감문 맡긴 거였는데 작품을 만들어왔네? 아주 잘했어"와 같은 칭찬은 사실 바라지 않는다. 해주신다 할지라도 마음에 오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분명했다. 칭찬과 인정을 바라는 것이 아닌 비난과 비판이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안 한다는 것, 비난과 비판을 아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가.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는 말이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는 있다고 하지 않나. 직장인이 업무에서 실수를 안 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걸 너무나 잘 알지만 실수라는 것이 두려웠다.
앞서 사람은 어쩌면 사랑과 인정 이 두 가지를 위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었다. 이 경우엔 나는 인정보다는 사랑에 조금 더 가까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많이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지난 날들 속에서 사랑보다는 무관심 속에서 더 오랜 시간 지내왔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상대방을 위해 끊임없이 맞춰가야 했던 삶은 마치 내가 그 어디에도 수용받지 못하는 것만 같은 경험을 안겨주었다.
사랑이 아닌 더 큰 기대와 부담만을 받아왔던 지난 날들 속에서 내가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태도로 흠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다. 분명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늦지 않았으며 아직도 있는 모습 그대로에 대한 인정과 사랑을 바라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