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맞는 감정을 회피한 나에게
일요일 아침 일찍 이모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로 향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교회 사모님께서 이모할머니의 친구분이셨던 모양이다. 동네의 작은 교회였던 터라 동갑인 친구들은 없었고 모두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아이들이 거나 이미 중학교에 올라간 형 누나들이 그나마 비슷한 나이의 또래였다. 지금이야 2~3살 나이차 정도는 또래라며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어린 나이 때 2~3살이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키가 훌쩍 커버리는 어린아이에게 정말 큰 나이 차이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지내고는 했었다.
교회의 평균 성도 연령이 높았던 탓에 당연하게도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엔 다소 어려워 전도사님이 지도해주시는 어린이 성경 수업을 나와 중학생 형 누나들은 듣게 되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어린 나이에 나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뭐 이렇게 하나님은 나한테 하지 말라는 게 많으실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아이라니,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고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라니, 하고 머릿속에선 표현하지 못하는 불만들이 쌓여만 갔다.
"저도 학창 시절엔 얼마나 불량한 학생이었는지 몰라요. 그러다..." 전도사님의 간증이 나의 불만과 겁을 키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겁먹었으니 말이다. 같은 반의 소영이와 지현이를 같이 좋아하면 안 되는 거구나, 이미 그 둘을 두고 마음을 못 정하는 것에서부터 죄책감과 자책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아이... 란 말이지?"
지난 수많은 에피소드들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잘 풀어가지 못했고 혼자 인내하고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으며 그 마음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나는 것들이 많았다고 서술했었다. 하지만 1화에서 잠깐 얘기한 바와 같이 모든 원흉을 단순히 부모님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감정이란 사람으로 친다면 피와 같은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관계에서 감정이 없다면 혈색 없는 사람처럼 생기 없이 무미건조하기도 하며 몸의 곳곳에 피가 잘 돌아줘야 건강하듯 관계에서도 감정을 서로 잘 주고받으며 감정이 계속 돌고 돌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타인들마다 나에게 계속 감정은 전해주고 나 역시 타인의 감정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려 많은 에너지를 쓰지만 정작 나의 감정과 마음은 타인에게 표현되지 못한다면 나의 감정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한번 발생된 감정은 이미 만들어져 버렸는데 어떻게 해서든 해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이라면 결국 내 안에 고여있게 되고 나 혼자 그 감정들을 인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릴 적부터 상황상 여의치 않아 부모님이 내 감정을 많이 챙겨주지 못했거나, 엄한 환경이었거나, 어린아이가 판단하기에 부모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들어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어린아이는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응석을 받아줄 대상을 잃어 그때 충분히 표현했어야 할 그 나이대의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한 채 그다음 레벨의 감정을 학습하게 된다. 그 나이 대 표현되어야 할 감정은 아직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가끔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이거나 내가 솔직해져도 되겠다고 판단이 되는 사람 앞에선 한 없이 유치해지고 어리광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며 해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혼자 그 감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묻어두다가 감성적인 풍경을 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영화나 음악을 보며 나의 감정을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늘 솔직하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는 해소되지 않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난관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솔직해진다는 걸까. 어떻게 마음을 터놓는 걸까. 왜 모든 관계가 계속해서 지쳐만 갈까. 친한 친구에게 지금 뭐 때문에 힘들고 뭐 때문에 외롭다고 백날 털어놔도 왜 마음은 풀리지 않는 걸까.
어쩌면 지금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내가 느끼는 감정을 털어놓기보다는 살아가며 수없이 접하고 흡수하는 타인의 마음과 욕구와 감정을 잠시 그만 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나도 힘든데 쟤는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내가 먼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쟤를 챙겨주겠어'
상대방의 여러 힘들 감정들에 앞서 공감해주고 마음을 예측하는 일에 그만 에너지를 쏟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야 내 마음과 감정에 쏟는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