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여유(2)
늦게까지 이어진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적당히 의자에 걸터앉았을 때는 약 아홉 시쯤이었습니다. 어두운 방의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 쉬고 나니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추가 업무를 5시가 넘어간 시간에 전달해준 과장님 때문도 일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대리님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짜증이 밀려온 이유는 퇴근 이후 해야 하는 계획들을 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영어공부, 운동, 빨래 등 오늘 퇴근 이후 하기로 계획했던 것들을 하기 어려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아주 늦은 시간이라 정신없이 씻고 바로 자야 하는 거면 이렇게까지 짜증 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서두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애매한 시간이기에 마음은 벌써부터 딜레마에 빠집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여유를 부리면 자책과 함께 내가 나 자신을 게으르고 답답하게 여길 것만 같고 그렇다고 계획한 것들을 하자니 제대로 집중해서 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꽤나 잘 알려진 축구 클럽 감독과의 짧은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완벽주의에 아주 계획적이고 꼼꼼한 성격을 가졌는데, 그러한 면모가 이렇게 감독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장점이 되었나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렇게 오래 감독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가진 천성의 반대되는 면모를 더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신 말대로 저는 다음 경기를 앞두고 정말 철저하게 분석하여 준비합니다. 식단부터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제 머리가 터져버릴 만큼 하나하나 컨트롤하려고 하죠. 이 모든 건 다음 경기를 이기겠다 라는 목적 하나를 위한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경기를 준비해도 다음 경기는 질 수 있습니다. 다음 경기를 이 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깁니다. 물론 그날 하루 종일 심지어 다음날까지도 진 경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합니다. 진 경기는 그걸로 지나간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습니까? 그냥 또 다음 경기를 위해 준비할 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는 제가 컨트롤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둘러 쌓여 살아왔습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도 전학으로 인한 이별도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지금도 직장이며 각종 전염병이 나돌며 따라오는 사태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내 주변만큼은 내가 통제하고 싶고 내 뜻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질 수도 있는 감독의 말처럼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앞에 놓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되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로 그냥 두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계획했고, 원했고, 오래 기다려왔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대로 흘러간다면 그때는 그냥 그렇게 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나간 것을 그대로 지나가게 두고 그다음을 준비할 마음의 넉넉함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