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받아들이는 마음
주말 오후 어느 한 카페에서 두 친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듣는 역할이었고 다른 한 친구는 핸드폰으로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들어주던 친구는 듣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리액션을 계속 해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열심히 얘기 중인 친구가 아까 전부터 직접적으로 자기 자랑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는 이야기들이 결국 자신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고 며칠 뒤 해변가에 놀러 가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바디 프로필을 찍고 열심히 먹어서인지 군살이 많이 나왔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살은커녕 누가 봐도 멋있는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사진이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 명품 브랜드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멋진 몸매에 좋은 액세서리들을 착용한 사진들이었지만 친구는 선물 받은 선글라스인데 자기한테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며, 풍경은 좋은데 자신의 몸매가 아쉽지 않냐며 들어주는 친구에게 질문을 연이어하고 있었습니다.
듣고 있는 친구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친구는 이 선글라스를 선물 받았다고? 너무 예쁜데? 아니 이 몸매가 어떻게 아쉬운 몸매야, 라는 인정과 칭찬을 듣고 싶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그 비위를 계속 맞춰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국 듣고 있는 친구가 허세 좀 그만 부리라며 단호하게 한 마디 합니다.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던 친구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도리어 화를 냅니다. 내가 언제 허세를 부렸냐며, 자신은 자기 잘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 않냐며 아쉬운 점만 이야기한 것이라고 강하게 부정합니다.
듣고 있던 친구도 화를 내려 하지만 결국 저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던 친구는 듣고 있던 친구가 떠난 뒤에도 화를 가라앉힐 줄 몰랐습니다.
이 친구가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았는지는 본인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멋진 몸매를 가졌고 예쁜 선글라스를 가졌다는 외적인 부분의 인정을 듣기 위해 서일수도 있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과 과거 외적 콤플렉스를 잊어버리기 위한 자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이 친구는 자신의 불안에 솔직해질 용기가 아직은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게 대하지 못하다 보니 남들 앞에 드러나는 것은 더 자신이 없습니다. 불안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마주하고 싶지 앉았던 것입니다. 끊임없이 비교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세상 속에서 공허하고 불안한 마음은 큰 위기로 느껴지게 됩니다. 잠시라도 정체되고 멈춰지는 일은 위험으로 인지 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모습으로든 그 불안과 공허를 외면하고 자기 자신조차 그 마음을 회피하여 바라보지 않고 넘겨버리려 하기에 강하게 부정하는 태도로 나와지게 된 것입니다.
100m를 전력 질주하여 뛰면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거나 걸어야 하듯, 우리의 마음도 열심히 뛰다 보면 잠시 걸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잠시 멈춰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200m를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해서 잠시 쉬어가고 걸어가는 자신을 잘못되었다고 바라볼 이유는 없습니다. 저 200m를 달려가는 사람도 처음 100m 때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고 천천히 쉬어가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처럼 살아가다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함을 당연하게 여겨보는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