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가 Feb 24. 2023

EP10. 아직 거기 있는 사람

회피형의 연애

전주에서의 작별 이후, 몇 주의 시간이 더 흘렀다.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해외 워크숍이 있었고, 일주일간의 지방 출장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어딜 가나 그녀와 닮은 사람이 있었다.


비행기 이륙 후, 승객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설명하는 승무원이 그녀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승무원을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괜히 반가워 더 쳐다봤다가는 그 승무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보고 싶은 마음을 부추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간의 지방 출장은 많은 외국인 인사들이 참석하는 연례행사였다. 외국인 분들의 관광을 돕기 위해 외국어가 가능한 가이드 한 분을 섭외했다. 그녀와 눈이 참 닮았구나. 이것이 가이드분을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이쯤 되면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심리적인 작용으로 인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대상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보게되는 것일까? 사실 그다지 닮지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닮았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여러 차례 고비도 있었다. 그래, 사실 전주에서 우리가 아주 안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서로 잠잠했으면 연락 한 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몇 번 들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쉽게 잠재울 수 있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만큼 지난 몇 달간의 힘듦이 결코 작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혹은 우리라면, 결국 함께 있어도 외롭고 지치는 길이 될 것임을 알고있었다.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더 흘렀다.


올해 하반기 업무 추진 일정표에 대한 회의를 위해 회사 모든 직원들이 회의실로 모였다.

부장님께서 올 하반기 일정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하셨다. 배포된 회의자료를 눈으로 쓱 훑어 내려가던 중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다. 어쩌면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녀 회사의 수많은 직원들 중, 그녀가 이곳에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작은 희망이 주는 가능성을 나는 애써 경계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주 기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치 꺼진 촛불 심지 위로 피어오른 연기처럼, 내 마음속에 희미하지만 그러나 확실히 존재했다. 우연히 불어오는 작은 바람을 받아 이 심지에 불이 지펴올지, 이대로 그 연기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지난 6개월간의 기억 속에, 이 연기의 향이 살아있음은 분명했다.



이전 09화 EP9. 빈자리의 무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