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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가 Feb 22. 2023

EP7. 여기서 또 만나네요

회피형의 연애

첫 화


요즘은 어떻게 지냈어요?

상담센터에 도착하면 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상담을 받은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은 센터를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오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미리 생각하게 된다.


“답답했어요. 이해 안 되는 것도 많았고. 친구든 직장에서든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왜 이렇게 해줄 수 없는 걸까? 하는 것들이 많았죠”


실제로 한동안 타인으로부터 느꼈던 감정들은 모두 서운함 혹은 답답함이었다. 요즘들어 주변에서 나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 생각엔 그 친구랑 연관이 깊은 것 같아요” 한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선생님께서 그녀를 언급했다. 지난달 처음, 선생님께도 드디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서 만났으며, 어떤 일들이 있으며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먼저는 그녀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다 보니, 지금 주변관계들에게서 답답함과 서운함이라는 감정들을 더욱 크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감정들의 대다수가 주변 관계들이 나의 상식과 계획을 벗어남으로써 느끼게 된 것들이죠? 마땅히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느끼는 감정들이요. 어쩌면 지금 가장 이해 안 되는 건 물론 주변 관계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일지 몰라요. 가장 계획, 상식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건 그녀인 거죠. 가장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람.”  선생님이 계속 설명했다. 그녀와의 관계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죠? 그렇다면 기간을 한번 정해 보는 건 어때요? 지금 당장 마음을 접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느 날을 정해놓고 딱 그날까지만 기다리는 거죠. 그때는 그만두더라도 충분히 애쓴 거예요. 할 만큼 한 거죠”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생각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만큼의 충분한 시간도 아니었다.


나와 그녀 사이의 교류는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더 이상의 연락도 만남도 없었다.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는 기다림도 이제는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실수 탓이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잊을 수 있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끊음은 늘 어렵다.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내가 지금 힘들어서 눈앞의 결승을 앞두고 포기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야를 가리는 땀과 고통으로 눈앞이 흐려져 결승전을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지난 몇 달간 달려온 여정이 이제 곧 마무리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모르잖는가. 그녀 역시 커져가는 마음을 티 내지 않도록 애써 잘 억눌러왔던 것일지도 그리고 참는데도 한계에 다다라 마음을 열어야만 할 상황이 머지않았을지도.






이번 주말 괜찮아? 한번 내려갈게

남동생이 전주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지 2달이나 지난 뒤에서였다. 가족들이랑 교류가 잘 없다 보니 동생에게도 전혀 신경을 못쓰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그 주 주말 바로 동생을 보러 전주에 있는 대학교 근처 식당을 찾았다. 식당부터 카페까지 전부 동생이 먹고 싶은 걸로 미리 찾아두라고 얘기해 둔 덕에 오늘 어디를 갈지는 다 정해져 있었다.


내가 마지막 한 입을 끝내고서 이제 나갈까? 하는 의미의 손짓을 동생에게 건넸다.


아직 마저 다 삼키지 못한 한 입을 오물오물 씹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직원이 카드를 받아 계산하는 동안 다시 한번 가게의 인테리어를 훑었다. 전주구나. 불과 어제저녁까지 야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어느새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전주에 왔구나.


“손님” 카드를 건네며 직원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구석진 자리에서 어딘가 낯이 익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로 보이는 듯한 사람과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숟가락을 쥐고 리조또를 먹고 있었다.


“나였으면 가서 말 걸었다”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동생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어왔을 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고 직원이 건네는 카드를 다시 받았다.

“전여자 친구? 전전여자 친구?” 동생이 히죽 웃으며 놀렸다.

“아니야 그냥 닮은 사람이야”

“생각하는 그 사람 맞을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까부터 저 사람도 형 계속 쳐다봤어”

약 반년 전 이곳 전주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 짧은 교류를 이어갔고, 이제는 연락도 만남도 모두 끊겼다.

그리고 이 시간 서울에 있어야 할 그녀가 여기 전주에 있다. 다시 전주에서 또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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