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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가 Feb 21. 2023

EP6. 남들 다하는 평범한 연애

회피형의 연애

첫 화


한동안 답장 없는 그녀와의 카톡방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보낸 마지막 카톡은 하루하고 20시간 전이다. 이제 4시간 뒤면 무려 이틀 동안이나 답장이 없는 셈이다. 이미 여러 차례 답이 너무 느린 거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진 비슷했다. 그래,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시간을 더 갖고 지켜보고 싶다고 한 입장에서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건 예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답답하다가 생각나기도하고 밉다가 또 다시 그립기도했다. 사실 이쯤 되면 따뜻하고 잘 챙겨주었던 초반의 그녀가 그리운 건지 아니면 지금 그녀가 보고싶은건지 헷갈렸다.


“요즘 너무 바빠졌어요. 집에 가면 바로 기절하고, 그 외에도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너무 많은데 시작도 못하고 있네요. 무엇보다도 사실 저 핸드폰 잘 안 봐요. 아침이랑 자기 전에 조금 보고 그 외에는 잘 안 들여다보네요”


내가 어떤 대답을 해도 말을 오목조목 잘하는 그녀는 어떻게든 어쩔 수 없었음을 설명하며 빈틈없는 이유를 댔을 것이다. 핸드폰 볼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바뀌어있는 네일과 머리는 언제 한 것이냐는 질문을 할 만큼 나는 그녀에게 부담을 줄 용기가 없었다.


아무리 바쁘고 핸드폰 잘 안 보더라도 답장이 오는 데까지 하루에서 이틀이 걸리진 않아.


오늘도 야근하고 들어가는 거야?라는 금요일 저녁에 보낸 나의 문자는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서야 답변받을 수 있었다. 답답함과 서운함을 느끼기엔 이미 그녀가 벌려놓은 우리 둘의 거리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습관처럼 그녀에게 답장이 왔을까 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핸드폰의 데이터와 와이파이는 꺼두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받아내야 했다.






"내일 점심? 좋아요! 먹고싶은 거 생각해와요. 사줄게요"

내가 '그녀는 마음이 없는거구나' 하며 마음을 정리하려 할 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한 태도로 나를 반겨주었다.

 

서로의 회사가 멀지 않다 보니 아주 가끔 연락이 일찍 닿을 때면 점심을 같이 하고는 했다. 짧은 50분간의 만남은 빠르게 지나간다. 밥 먹고 며칠간의 근황을 나누고 나면 어느새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간다.

이렇게 잠깐 만날 때마다 고맙게도 나를 빈손으로 보내지는 않는다.


“요즘 이 비타민 많이 먹는대요. 먹어봐요. 잘 맞으면 더 줄게요”


“오늘 밸런타인데이던데. 이 집 초콜릿 좋아해서 몇 개 샀어요. 가서 졸리면 먹어요”


노동을 마치고 일당을 받는 기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담은 정성을 표현할 때면 그녀의 마음은 더욱 헷갈려온다. 


오늘도 기어코 이 시간이 왔다. 한 손엔 작은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걸어가는 그녀에게 손짓하며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인사를 건넬 때면 언제 또 연락이 될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 쓰는 것은 나만인듯,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의 마음이 허락할 때 다시 연락할 것이고, 괜찮을 때 만남에 응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그녀가 먼저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혼자 끙끙 앓는 관계를 나는 왜 이어나가고 있을까?

나는 그녀가 왜 좋을까?

누구를 좋아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할까. 그건 머리로 좋아하는 거잖아. 아니 피해 갈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정신 차려. 왜 꼭 그녀여야 하는 거야? 오지 않는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마음고생 하며 계속 연락하고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하고 가야겠어. 


이 친구가 주는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


역 출구에서 나와 집까지 걸어가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녀가 주는 챙김을 받아보고 싶었고 성숙하고 책임감 있어 보였던 저 사람이 쏟는 마음은 얼마나 안정감 있고 따뜻할까 싶었다. 그녀와의 초반, 내게 주었던 따뜻한 말들과 위로들을 통해 그녀의 여유와 마음이 허락 할 때, 어떤 표현들을 해줄 수 있는가를 느껴버렸다. 


결국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고 무엇을 해주고 싶은가 보다는 위로할 줄 알고 따뜻한 말을 건네던 그녀라면 지독히도 위로받고 싶고 챙김 받고 싶은 내 마음속 구멍을 메꾸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보다 나를 잘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고른 것이다.


연애, 그거 어떻게 하는 걸까?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는 커플을 바라봤다. 못해도 반년 이상은 만난 커플 같았다. 서로에 대한 긴장과 설렘은 사라지고 편안함과 익숙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저 둘은 같은 대학을 다니다가 먼저 용기 낸 누군가의 도전 혹은 주변 친구들의 소개로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다가 SNS를 통해 간단한 정보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서먹서먹했던 연락은 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며 서로가 생각하는 이쯤이면, 이라는 합리적 교제 시작의 그날을 정해갔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의 적당한 썸의 기간 끝에 교제에 성공했으리라. 가장 무난하면서 흔한 루트이다. 얼마 전 까지는 서로의 안 맞는 것들과 다른 부분들을 알아가다가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지금의 저들이 있게 되었다. 나처럼 만날 때와 떨어져 있을 때의 온도차를 겪거나 답답함과 그리움 사이의 격차를 경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카톡을 보낸 지 이틀하고 3시간,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던 이 답장은 정확히 2시간을 더 기다린 이틀 하고 5시간이 지난 후에 서야 받을 수 있었다. 나름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취미와 놀거리는 많았지만 어쩌다 이렇게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걸까?


끊임없는 두 마음이 충돌해왔다. 사실 그 누구보다 깊고 사랑많은 사람인데, 환경적 심리적 여러 요인들로 인해 그것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본 그녀의 눈이 그러했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본능과 끌림의 영역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인지 혹은 내가 마음을 쓰는만큼 나도 받고싶은 보상심리인지, 거의 다 왔어. 여기서 멈추면 눈 앞의 보물들을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거야,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오랜 기다림끝에 짧은 답장 한 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나 오래 기다린 끝에 받은 답장이지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처음 하루는 자존심이었다.


너도 늦어? 나도 늦을 거야. 


일주일이 지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이 친구는 답장받을 마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많은 연락이 오고 가도 이 친구의 마음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정작 나는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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