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로 빛날 거야
201호 이혼법정.
사건번호를 호명하자, 10살 훤하게 생긴 소년이 베트남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자리에 함께 앉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에게 "동우, 오늘 엄마랑 같이 오려고 학교에 안 간 거야?" 하고 웃으며 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낯선 장소, 낯선 기운에 눌려 어색하게 앉아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동우, 오늘 하루 학교 땡땡이쳐서 좋겠네. 그치?"
나의 짓궂은 질문에 그제야 아이는 웃음을 띄우며 내 눈을 보며 "네"하고 대답한다.
그 맑은 웃음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아이야... 이렇게 맑게 빛나는 아이야...
너는 어떤 사연을 안고 네 엄마의 손을 잡고 이 법정에 왔니...
11년 전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엄마는 아들을 하나 낳고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살았다.
22살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은 몸이 시원찮아 제대로 벌이가 없었고 80의 시부를 모시고 살았다.
시부는 공장을 다니며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여 그 가정을 벌어먹여 살리고 있던 젊은 며느리를 늘 의심하며 괴롭혔다.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와도 난리를 쳤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기 아버지 편을 들어 아내를 외롭게 했다.
젊은 아내는 아들 하나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살았다.
어차피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들을 생각하며 한국인 아버지의 그늘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여기며 시부의 온갖 횡포에도 묵묵히 살아냈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남편도 아내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그녀에게 어느 놈과 붙어먹다가 이제야 들어왔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이런 환경이 어린 아들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쉼터에 들어갔다.
그리곤 한 푼 두 푼 아껴 모아두었던 돈으로 방을 하나 얻었다.
이제 숨을 쉬고 살 것만 같았다.
아들도 사라지던 웃음이 돌아왔다.
그래 동우야, 엄마랑 둘이서 이렇게 살자.
엄마는 동우만 생각하며 힘을 낼께.
그러나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우의 할아버지가 집을 찾아와 온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치며 문을 두드렸다.
아내는 너무나 두려웠지만 도저히 그대로 숨어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시부는 며느리의 얼굴을 보자 대뜸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해대며, 어디 이씨 집 장손을 데리고 도망갔냐면서 손자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다.
네 년은 집을 나가든지 말든지 상관없지만 이씨 피는 데리고 가야겠다면서 며느리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가슴을 밀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동네가 소란스러워지자 주민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이 출동했고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가야 한다며 난리를 치다 결국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집으로 들어온 엄마는 동우의 까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당하던 수모를 동우는 창을 통해서 모두 지켜보았고, 모두 들었다.
엄마와 동우는 서로 껴앉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서...미안해..."
엄마의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마침내 엄마는 결심했다.
남편과 시부를 폭행 및 상해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아들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싸움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헤어지기 위하여...
대한민국은 나와 내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까...
나와 동우는 마음 편히 함께 웃으며 살게 되는 날이 올까...
(아이의 성명은 가명이고, 실제 재판한 사건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상황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