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고 싶었어.
2024고단21890 상해.
피고인 이만수. 54세.
베트남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여 욕설하고 때림.
법정에 나온 이만수는 자신의 범죄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억울하다고도 했다.
여자가 한국에 온 뒤부터 늘 아이는 방치해 놓고 베트남 남자와 놀아났다고 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계속하여 뭐라고 중얼거린다. 법정경위가 제지를 하여도 막무가내이다.
저런 할아버지들은 도저히 맊을 방도가 없다.
빨리 재판을 마치는 것이 상수이다.
재판 종결.
선고기일을 정해주고 피고인과와
그의 아버지를 얼른 돌려보냈다.
선고일에도 이만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 법정에 왔다.
실형을 선고할 만한 사안이 아닌지라 집행유예 판결을 하면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가정폭력 예방 수강명령 등 붙일 수 있는 모든 부가처분을 붙였다.
할아버지가 행패를 부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웬일인지 순순히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났을까.
2024고정1158. 폭행
피고인 이길막. 82세.
베트남 며느리를 욕하고 폭행함.
그랬다. 이번에는 이만수의 아버지 이길막이 재판을 받으러 왔다.
80이 넘은 노인인이어서인지 200만 원 약식명령이 내려졌는데,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공소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아니요. 나는 손가락 하나 댄 적이 없어요."
판사의 물음에 마치 나라를 빼앗긴 것 마냥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수사기관에서 며느리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그 사실을 목격한 손자의 진술도 지네 엄마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피고인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부인하게 되면 그 진술을 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법정에서 물어보아야 한다.
며느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10살 된 손자를 이 법정에 불러서 물어보라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멱살을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보았느냐고?
너를 데려가기 위해 할아버지가 엄마를 때린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10살 그 아이에게 어른들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미 어른들이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 않은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길막 그자를 제대로 엄벌하고 싶었다(그래봤자 벌금형으로밖에 처벌할 수 없다. 벌금형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는 재판으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려 깔고 피고인에게 단호히 물었다.
"이길막 피고인, 정말 며느리의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까?"
"아, 뭐... 말 좀 하자고 팔을 잡기는 했습니다."
"며느리가 말하기 싫은데 억지로 말하자고 잡아 끄는 것도 폭행이 될 수 있어요.
멱살 잡고 밀치고 이런 것 하지 않았다고 해도 폭행이 된다 말입니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면 선처를 해 드릴게요. 만약 부인한다면 며느리 손자 다 불러서 법정에서 물어봐야 되는데, 불러서 유죄로 인정되면 국선변호인 비용과 증인여비를 모두 피고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판결할 겁니다. 벌금형도 증액할 수도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법대 위에 까지 들리는 듯했다.
국선변호인과 잠시 의논하더니 공소사실을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약속대로 나는 피고인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해주었다. 결론적으로는 벌금을 내지 않도록 선처해 준 것이다.
마치 개선장군 마냥 의기양양히 돌아가는 뒷모습이 역겨웠다.
한 인간의 혐오스러운 모습에 토악질이 날 것만 같았다. 자괴감도 들고 마음이 너무 뒤숭숭했다.
그렇지만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꼬맹이에게 더 나쁜 상황이 생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자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하기 위해, 그 어린것을 증인석에 앉혀 그날의 일을 캐묻게 할 순 없다.
그 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며느리와 손자를 어떻게 대할지는 불 본 듯 뻔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하더라도 그는 반성은 고사하고 더 악에 바쳐 며느리와 손자를 계속 괴롭힐 것임이 분명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고개를 떨군다.
나는 판사로서 정의롭지 않았다.
나쁜 놈에게는 그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한다.
그것으로써 판사로서 피고인에게 정의를 물었고 응당의 처분을 하며 그 할바를 다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양심없는 인간에게 일말의 타격도 없는 벌금 200만원의 판결이 한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낼 것인지도 나는 안다.
깊은 상처로 이미 할켜진 그 가슴을 또다시 사나운 손톱으로 잡아뜯는 격이다.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법원에서 묻지 않은 벌금 200만 원치의 벌을 그는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인간 만사가 법으로 모두 깔끔하게 해결이 되면 좋으련만 늘 그렇지가 못하다.
증거재판주의라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벌은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나는 그리 믿는다.
법으로 받지 않은 벌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다른 어떤 모습으로, 언제든 찾아갈 준비를 하며 더 크게 몸집을 부풀려 압도해 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 아이였다.
끝까지 형사법정에 나오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 동우였다.
엄마와 손을 잡고 이혼법정에 나온 너를 끝끝내 만나게 되었구나. 내가...
너는 이렇게 빛나는 아이였구나. 동우야.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