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산골 마을인 히토모리는 3년 전 혜성 파편이 떨어지는 바람에 통째로 사라져 버린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여고생 마츠하는 다음 생에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는 게 소원이었다. 시골에서의 생활과 여자로서의 삶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도쿄에 사는 꽃미남(?) 남고생 타키는 우연한 계기로 3년 전 시골 소녀 마츠하와 몸이 뒤바뀌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마츠하와 타키는 서로의 몸이 뒤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몸에, 혹은 휴대전화나 노트에 메모를 남기면서 조금씩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게 된다. 2016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은 타키의 시점에서 과거와 마츠하의 시점에서 현재인 시공간을 오가고, 남과 여의 성차를 오가며 혜성 충돌이라는 재해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몇몇 설정이나 표절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영상미나 세밀한 작화, 감정 묘사와 전개 등은 세계적 극찬을 받으며 상업적 성공까지 이루어냈다. 이처럼 영혼이나 육체가 뒤바뀐다는 설정은 실제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담을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특히 《너의 이름은》은 거대한 자연재해라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만약에(IF)'라는 가정을 판타지 형식으로 풀어낸 점이 아름다운 영상미, OST와 만나면서 돋보일 수 있었던 작품이라 하겠다.
《너의 이름은》이 남성과 여성의 육체에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형태의 교차가 일어난다면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공존할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정유정의 장편소설 『진이 지니』이다. 《너의 이름은》에서 남과 여의 교차는 사실상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어떻게 교차될 수 있는가 하는 설정은 영화는 영화이고, 소설은 소설이라고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더구나 그 하나의 육체는 인간도 아닌 보노보라는 유인원의 몸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은 정유정 작가 특유의 치밀한 전개와 서술로써 가능해진다.
동물사육사이자 영장류 전문가인 이진이는 콩고 여행 도중 밀렵 당한 어린 보노보 한 마리를 만났던 적이 있다. 밀렵꾼들이 무서워 감히 구해낼 엄두를 못 내고 헤어져 한국으로 돌아온 ‘진이’는 어느 날 별장 화재로 위험에 놓인 보노보를 구출하게 된다. ‘지니’라고 이름까지 지어주며 영장류연구센터로 데리고 오던 도중 교통사고가 나게 되고, ‘진이’와 ‘지니’는 의식을 잃게 된다.
‘진이’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육신이 아님을 알게 되고, 우연히 이 일에 말려든 남자 김민주가 ‘진이’의 영혼을 가진 보노보 ‘지니’를 데리고 ‘진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서 각자의 육신을 본래대로 되찾고자 하는 3일간의 여정에 동참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진이’는 한 육신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영혼인 ‘지니’의 기억을 통해 보노보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자니’의 과거, ‘지니’의 감정 등을 공유하게 되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들을 성찰한다.
《너의 이름은》은 결론적으로 현재의 영혼이 과거의 육체를 빌려 당시의 끔찍한 재앙을 피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진이 지니』에서 동물의 감정을 알게 되고 인간의 이기심을 반성하게 된 인간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했을까?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결말에 있으며,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죽는다. 그 목숨의 가치는 그 어느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게나 단 하나씩만 주어진 것이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덜 소중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삶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