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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May 02. 2022

[북&무비] - 디아스포라

《미나리》 vs 『천국에서 한 걸음』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나리>와 『천국에서 한 걸음』은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가족의 이야기이다. <미나리>가 열악한 환경을 개척하여 농장을 일구는 과정을 통해 미국에 정착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천국에서 한 걸음』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한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극복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낯선 환경’과 ‘가족’이라는 공통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미나리>는 미국의 자본으로 미국의 제작사가 만든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로 보는 시각이 꽤 많다. 한국계 감독과 한국 및 한국계 배우들로 구성된 데다가 영화의 70% 이상의 한국어 대사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영향은 아마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인지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미나리>가 미국 이민 2세대인 정이삭(리 아이작 정)감독의 어린 시절 자전적 이야기라면, 『천국에서 한 걸음』은 미국 이민 1.5세대인 안나의 어린 시절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영화 <미나리>와 도서 『천국에서 한 걸음』의 가족이 부부와 어린 남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같고, 낯선 땅에서의 힘든 정착 여정으로 인한 잦은 부부싸움이 작품의 전반적인 이미지에 깔려 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미나리>에서의 문제적 갈등은 ‘미나리’처럼 아무 곳에서나 씩씩하게 뿌리를 잘 내릴 것이라는 암묵적 긍정으로 암시되지만, 『천국에서 한 걸음』의 갈등은 가족이 파탄 나고서야 미래에 대한 긍정적 암시가 가능해진다.   

    

  <미나리>와 『천국에서 한 걸음』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대상은 ‘아버지’다. 작품 속 ‘아버지’는 낯선 환경에서 가족의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중삼중의 고난에 처해있다.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부정당하거나 방해 받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미나리>의 아버지는 가족이냐 농장이냐고 묻는 가족을 떠나보내기로 한다. 『천국에서 한 걸음』의 아버지는 뜻대로 되지 않는 미국 정착생활에 백기를 들고 술에 빠져 폭력적인 아버지로 추락한다.     

 

  한편 <미나리>와 『천국에서 한 걸음』에서는 아이의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천국에서 한 걸음』의 화자는 ‘영주’라는 소녀다. 영주는 자신과 남동생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아버지의 폭력이 강렬한 컷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바다에서 물에 뜰 수 있도록 수영을 가르쳐 주던 그 따스한 손길 역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감각으로 각인되어 있다. 작품 말미에서야 그 감각의 주체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원망이 모두 하나의 감정, 즉 사랑임을 확인하는 데 이른다.     

 

  <미나리>에서는 할머니의 역할에 꽤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할머니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주 마주하는 것은 막내 데이비드다.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와 갈등하고 화해하며 정이 들어가는 과정은 이민자 2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여정과 같다. 그것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민자들을 대변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워터샐러리’가 아니라 ‘미나리’라고 함으로써 한국적 정서를 강조했지만, 그 미나리는 동아시아 전반에서 재배되는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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