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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May 06. 2022

 [북&무비]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강철비>  vs 『국가의 사생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영화 <강철비>가 통일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은 한반도의 가상 통일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들은 통일의 전조와 후유를 함께 진단해 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먼저 통일의 전조는 내부 분열이다. <강철비>는 북한의 정예요원 엄철우가 쿠데타로 인해 다친 북한의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제목으로 쓰인 ‘강철비’는 영화에서 사용된 집속탄을 의미한다. 집속탄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폭탄을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으로 쏟아낼 수 있는 강력한 공중 폭격탄을 말한다. 따라서 ‘강철비’라는 것은 집속탄만을 의미한다기보다 그러한 집속탄을 쏘는 자 아래 놓인 애꿎은 피해자, 즉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고통 받는” ‘분단국가 국민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통일은 북측은 북측대로, 남측은 남측대로의 내부 분열에 의한다. 그것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열은 또 다른 화합을 야기시킨다. 북한 내의 분열로 인해 남으로 쫓기듯 내려온 북측 관계자는 이전까지 팽팽하게 대립하던 남과 협력해서 북한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긴장된 남북관계가 북한 1호의 독재로 인한 것이 아님을 해명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비>는 <쉬리>(1999) 이후 가장 도발적이고 실감나는 상상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언제나 북한을 적으로 설정하던 ‘국뽕’ 영화와는 차별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은 과정들은 중요하지 않고, “자, 통일이 됐어, 그래서 어쩔래?” 하고 되묻는다. 준비도 없이 통일이 된 상황에서 펼쳐지는 혼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한 상황을 가정한다. 종종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남북한의 경제적 수준 차이를 거론하며 남측 사람들에게 생길 경제적 불이익을 호소하곤 한다. 작품 속 상황 역시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면들이 배경이 된다. 통일은 되었으나 남북한 지역 갈등은 여전하며, 행정시스템의 문제로 주민등록 되지 않은 북한 주민들은 대포 인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범죄자, 폭력배 등으로 그려지고, 남한 국민들은 최악의 개인주의자 또는 물질주의자로 그려진다.   

   

  <강철비>가 남과 북이 내부 분열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길을 모색했다면, 『국가의 사생활』은 현실적으로 상생할 수 없는 남북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공통적으로 남북통일이 최선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분단 상황일지라도 ‘사이좋게’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굳이 통일이 아니면 어떠냐는, 어쩌면 슬픈 전망이라 하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꿈에도 소원이 통일일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화가 소원일 것이다. 가장 좋은 조합으로 ‘평화+통일’이 된 상황에서조차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미래는, 물론 가정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더 이상의 민족상잔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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