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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Jun 10. 2022

 [북&무비] - 사과(謝過)의 입장

《우아한 거짓말》 vs 『우아한 거짓말』

 

  “각자의 마음속에는 우아한 거짓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크건 작건 모두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서 했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했던 모든 거짓말들이 우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3월,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개봉하면서 영화감독 이한이 한 말이다. 이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용서’에 대한 우리 모두의 자화상과 같은 이야기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 2009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뉴스 중 하나가 학교 폭력이다. 문제는 학교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현재는 많이 진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처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성장 과정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문제로 보기에는 이것이 각종 범죄나 자살 문제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해자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주변인들도 문제다. 대부분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친구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이 이야기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는 겉으로 보기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다.

      

 소설과 영화는 다양한 시선에서 다양한 장치로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한다. 왕따를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 우아한 거짓말로 언제나 위기를 모면하는 가해자의 입장, 그러나 그 가해자의 피해자 입장, 피해를 당하다가 자살을 한 아이의 엄마 입장, 자신의 딸이 가해자임을 뒤늦게 알게 된 또 다른 엄마의 입장 등이 그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각자의 입장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가해자의 엄마는 할 수 있는 게 사과밖에 없고, 피해자의 엄마는 그 사과를 죽어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영화는 원작인 소설을 대부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다만 캐스팅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소설 속 이웃 주민인 추상박은 소설 속 인물 묘사에 의하면 ‘추남’인데 배역은 ‘잘 생긴’ 유아인이 맡았다. 이러한 캐스팅은 영화가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 작품인데다가 2011년 영화 <완득이> 역시 이한 감독이 맡았던 인연에서 기인한다. 앤딩 크레딧에 유아인의 이름은 앞에 ‘그리고’가 붙어 있다. 즉 <완득이>의 우정출연을 의미한다. 또 하나 원작과 다른 점 역시 캐스팅에 있다. 소설에는 피해자인 ‘천지’는 키가 크고 갸름한 얼굴을 가졌고, 가해자 ‘화연’은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천지 역은 얼굴이 동글동글한 김향기가, 화연 역은 갸름한 김유정이 맡았다. 이런 소소한 차이 외에는 소설이나 영화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소설에는 김려령 작가 특유의 문체, 말하자면 비극 속에서 종종 빛을 발하는 날카로운 유머와 ‘대사빨’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야기는 왕따를 당하던 14살 소녀의 자살을 시작으로, 그 언니가 동생이 남긴 털실 속 유서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을 풀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 그리고 그것이 범죄나 자살로 이어지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당사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전문가나 어른들의 대책은 언제나 사후약방문이었다. 죽은 동생은 다섯 개의 털실 속에 언니와 엄마를 비롯해 하나씩의 유서를 남겼다. 마지막 유서에는 천지가 천지 자신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남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지내고 있지?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지? 고마워, 잘 견뎌줘서.” 


여기서 중요한 건 견디는 게 아니다. 지나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그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힘내자, 대한민국 아들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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