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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다허브 Jul 22. 2022

  2. 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픕니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수다를 나누다

                                    

  샘이 났다.

  낯선 감정을 마주했다.

  당황스럽다.

  누군가 잘 되는 것에 배다 아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애써도 안 되는 일이 그는 척척 이루어 낸다. 그것도 자주 말이다. 내 눈에는 그냥 막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부러움에서 오는 복통인 셈이다. 이 감정을 마주하자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에 이르렀다. 난 겨우 이 정도의 인간이었구나.

 ‘왜?’라는 의문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왔다. 난 왜 그렇게 안 되는지와 그는 왜 그렇게 잘 되는지를 찾아야만 했다. 그곳에 나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찾는다’ 보다 ‘뒤진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뒤집어 가며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위안으로 삼는다. 그와 나는 목표가 다르다. 방향도 다르다. 가진 자본도 다르다. 인맥도 다르다. 지역도 다르다. 모든 것을 나보다 더 많이 가졌기에 빠르게 쉽게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게 억지스럽게 그렇다. 이런 이유여야지만 나의 노력과 어려움이 퇴색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여러 왕들 중 그대가 제일 밉소. 그대는 밤낮 말다툼과 전쟁과 싸움질만 좋아하니 말이오. 그대가 매우 강력하기로 그것 역시 신이 주신 것 아니겠소.
나는 그대 일에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며 그대가 분개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오. 내 몸소 그대의 막사로 가 그대의 명예의 선물인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데려갈 것이오. 그러면 내가 그대보다 얼마나 더 위대한지 잘 알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도 앞으로 감히 내게 대등한 언사를 쓰거나 맞설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오.  
일리아스 제1권 176행     


  아가멤논이 사제의 딸을 돌려주고 아킬레우스의 여인을 빼앗아 오겠다며 던지는 말이다. 아가멤논이 평소에 아킬레우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아킬레우스는 인간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신처럼 불사는 아니지만,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엄마인 테티스는 인간이기에 언젠가는 죽게 되는 아들이 안타까워 아기 때 스틱스 강에 몸을 담가 최대한 보호해 주려 했다. 이때, 발목을 잡고 했던 탓에 그곳만이 유일한 약점이 된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아킬레우스가 그는 내심 못마땅했다.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여신을 엄마로 두었고 능력도 뛰어나 트로이 전쟁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니 말이다. 최고 사령관이지만 그보다 부족함이 많았던 아가멤논은 질투심에 휩싸여 불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아가멤논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와 껄끄러운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샘을 처리해야 했기에 그가 잘되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억지스러운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나락으로 떨어진다. 며칠을 침대와 물아일체 하고 생각을 끊으려 핸드폰이 세상의 전부인 듯 지냈다. 하지만 사실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의 노력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요즘 안일함에 젖어있다는 것을. 이렇게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나니 시샘이 사라졌다. 내 눈에 안 보일 뿐 그도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낄 수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난 부러움에 눈이 멀어 아가멤논처럼 실수할 뻔한 것이다.

  미친 듯이 열심히 살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일본 유학이 가고 싶어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 도서관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열정을 불태웠었다. 그리고 겁이 나서 가지 못했다. 결혼하고 좀 더 나은 살림을 위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나를 잊은 채 지내기도 했다. 물론 살림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시작한 공부가 재밌어서 직업으로 연결하기 위해 수업을 다닐 때는 하루를 조각조각 나누어 쉴 짬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버닝 아웃되어 버렸다. 무엇을 위한 처절함인지조차 잊은 나를 보고 허무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바쁨의 결과들이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워라밸을 맞추는 삶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 노력의 결과가 항상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것도 아님을 깨달은 셈이다.

   누군가는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일 거라고 할지 모르겠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능력 밖인 것들까지 욕심을 내어봤지만, 더 처절하기만 했다. 지금은 내가 가능한 영역에서 가능한 만큼만 하고자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해 오히려 더 좋다는 것을 안다. 성공의 모양과 색깔은 다양해야 하는데 우린 너무 획일적으로 그리고 있기에 자신을 몰아세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만의 모양과 색깔로 꾸미는 중이다. 타인의 만족은 내 만족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나의 노력이 빛을 잃어서이다. 혹은 그의 노력과 열정을 무시해서이다. 혹은 비교하는 삶에 익숙해서이다. 혹은 나를 믿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그 복통을 가라앉히려면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답은 나에게 있다.

 처음 마주한 ‘시샘’이라는 감정 덕에 다시금 나를 찾아간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만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던 나였다. 잠시 그것을 잊고 그와 나를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감정을 만났으니 이 또한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아가멤논도 좀 더 자신을 사랑했더라면 아킬레우스의 능력을 부러워하며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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