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생각

코로나와의 일상

by Professor Sunny

미국에 작년 이맘때쯤 한참 코로나가 심했다. 나는 어린이집을 갈 수 없는 아이와 반년을 집에서 지내며 화상 수업을 하다가 이대로는 우리 둘 다 사회적 고립에 빠지겠다 싶어 큰 결단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제 막 만 5살이 된 남자아이와의 자가 격리는 나에게 새로운 자아를 발현시키는 지름길이 되었다. 아무튼,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향한 곳은 바로 키즈 카페. 미국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전반적으로 시설이 너무나 깨끗하고 조명이 예쁜 한국의 키즈 카페에 대한 로망이 있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키즈 카페를 들락거리며 투어를 돌았다.


한국에서의 모든 활동이 다 재미있었고 의미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지난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큰 수확은 나의 엄마에 대한 이미지를 새로 썼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세 자녀 중 특히 나에게는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거나, 뭔가를 꼭 하라고 크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압박도 없이 어린 시절을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땅 파고 놀았다. 더욱이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동안 우울증과 사투하느라 나에게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랬던 나는 살면서 엄마와 내가 닮았다거나, 엄마와 내가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엄마 존재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거나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건 웬걸! 외식을 좋아하는 나, 외식을 좋아하는 그녀가 만났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한국에 놀러 갔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꽤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엄마와 나 아이, 이렇게 셋은 거의 세트처럼 두어 달을 살았는데, 나는 우리의 관계를 정말 잘 맞는 ‘외식 메이트’라 칭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를 가만 들여다봤다. 엄마는 우울증을 이기고 나서는 꽤 살도 찌고 넉넉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녀에게서 우울증을 빼고 보니, 그녀는 꽤나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이 말썽꾸러기 손자에게 화를 낸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지 않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주고, 아이의 놀이에 참여해주고, 아이가 하는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줬다.


나에게도 본인이 아는 진짜 맛집을 추천해주고,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맛있지? 맛있지? 내 말이 맞지”라고 물으면서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 퍽 귀여우셨다. 유튜브에서 요리 채널, 맛집, 건강정보를 찾아보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그녀가 새로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내가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나 없는 새에 바뀐 건가, 내가 그동안 엄마를 40년간 오해했던 건가. 엄마와 길게 떨어져 살았던 나, 그리고 엄마에 대해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솔직히 ‘이제 와서’ 엄마에 대한 인상이 다시 세워진 것이 너무 아쉬웠다.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사실 할머니와 지낸 세월과 추억이 없어서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슬픈 마음이 크게 들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어머니를 떠나보낸 나의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너무 늦게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기억에서 즐겁게 추억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도 이제라도 엄마가 나에게, 내가 엄마에게 서로 관심을 갖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이제 칠순이 되는 그녀가 늘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나의 가장 좋은 외식 메이트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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