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만나며 깨닫는다.
대화는 언제나 ‘말’보다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눈빛, 손짓,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리듬,
그 모든 게 대화의 전주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종종 “대화가 잘 통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건 어쩌면 “서로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속도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릴 적엔 내 말이 맞다고 믿었고,
어른이 되자 내 말이 틀렸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말이 ‘맞고 틀린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닿았느냐 닿지 않았느냐’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면, 말보다 먼저 표정을 본다.
그 사람의 하루가, 표정에 남아 있다.
어쩌면 나는 그 하루의 잔상을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피곤한 얼굴로도 웃음을 짓고,
누군가는 웃고 있어도 마음 한켠이 무너져 있다.
그런 얼굴들을 보며 나는 조금씩 배운다.
사람은 언제나 복합적인 존재라는 걸.
누군가는 글을 쓰면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글을 쓰며 더 유연해졌다.
그건 아마 사람을 만나며 얻은 감정 덕분이다.
대화 속에서,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문장들이 있었다.
“괜찮아요.”
“저도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짧은 말들이었지만, 그 말속엔
나를 이해해 주려는 ‘시간’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예전엔 대화를 ‘말로 나누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나누는 일’이라 느낀다.
같은 공간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생각이 흘러가도록 두는 것.
그 자체가 대화의 본질이었다.
말이 많지 않아도 괜찮았다.
침묵이 길어도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그건 이미 서로가 ‘대화의 깊이’에 들어섰다는 뜻이었다.
어느 날, 어떤 분이 내게 말했다.
“글만 보다가, 직접 만났는데 같은 사람이네요.”
그 말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아마 그 말은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칭찬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글로 나를 설명하려 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글보다 사람 자체를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이, 모든 말보다 오래 남는다.
사람을 만나며 알게 된 건,
우리는 모두 ‘말보다 마음이 앞선 존재’라는 것이다.
말은 그 마음을 나누기 위한 도구일 뿐.
진짜 대화는,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온전히 마음을 건넨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도
수십 가지의 감정을 전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안의 문장이 새로워진다.
내 글이 조금 더 다정해지고,
조금 더 이해심이 생긴다.
사람을 만나며 배우는 건 결국,
‘나를 다루는 법’이니까.
예전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
관계는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함께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나는 글을 통해 그 자리를 만들고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보이지 않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대화가
하나의 만남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요즘은 ‘글을 쓰는 이유’보다
‘글로 이어진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들 덕분에 내 문장은 살아 있고,
내 하루는 조금 더 따뜻하다.
이야기란 결국,
누군가와 마주 앉을 ‘용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그 용기를 낸다.
그리고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문장 하나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