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대해지는 법

by 주엉쓰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혹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중 하나다.


누군가가 이뤄낸 성취를 보면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싶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디며,

무엇을 포기했는지,

나는 전부 알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노력이

단순한 결과로만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그저 “잘했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덧붙일 수가 없다.

노력은 누가 봐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관대함이 나를 향할 때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1. 자기 검열이라는 이름의 벽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무모할 정도로 도전했고,

실패해도 쉽게 웃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자기 검열’이라는 그림자가 생겼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은 많아.”

“내가 이런 걸 해도 될까?”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결과를 부정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

그 감정들이 마음 한켠에 자리를 잡자,

도전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글을 올리기 전에도 수십 번을 고쳤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붙잡고

“이게 과연 괜찮은가”를 묻고 또 물었다.

결국 ‘완벽한 글’을 쓰려다

‘아무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완벽주의는 처음엔 성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족쇄가 된다.

나의 시선이 바깥이 아닌

내 안으로 향할수록,

모든 판단이 나를 향한 비난으로 바뀐다.



2. 관대함의 방향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냉정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신조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장을 조금 다르게 읽는다.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은 맞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기에

그가 버틴 시간만으로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남의 성취를 질투 대신 격려로 맞이하는 일,

그건 성숙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나에게 엄격하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 말은 때때로,

자기 파괴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을 다그치는 일은 쉽다.

“이 정도면 됐잖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만큼 노력했는데”라고 말할 순간에도

“아직 부족해”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 결과,

언제나 스스로를 불합격 처리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잊고 있었다.

나의 노력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견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의 시선으로 내 노력을 증명하려는 순간,

삶은 끝없는 비교의 늪에 빠진다.



3. 멈춤과 도망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지쳐버렸다.

벽 앞에 서면,

에너지가 솟구치지 않았다.

그전엔 그 벽을 넘기 위해

책을 읽고, 기록하고, 연습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조용히 등을 돌렸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눈을 감으면 모든 게 잠시 멀어졌다.

잠이 오지 않아도 억지로 눈을 감았다.

마치 전원을 꺼버리듯,

세상을 차단했다.


그건 회피이자, 동시에 자기 보호였다.

인간은 한계에 다다르면,

잠시 도망칠 권리도 있다.

그 도망이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숨이 막히면 잠깐 쉬어야 한다.

숨을 고르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결국 쓰러진다.


나는 그 사실을 늦게야 배웠다.



4. 완벽주의를 부수는 법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보자.’


해야만 하는 일에 매여 살다 보니

삶이 의무로 가득 찼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

‘언젠가’로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무언가 떠오르면 일단 했다.

“할 줄 몰라?”

그럼 배우면 된다.

작은 성취라도 쌓이면

그게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겁쟁이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를 먼저 두려워했고,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다.


두려움은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훨씬 크다.

내가 만들어낸 상상의 벽이

실제의 벽보다 더 단단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벽은 생각보다 얇았다.

넘고 나면 허탈할 정도로 쉽게 부서졌다.

결국,

넘지 못한 건 벽이 아니라

내 안의 공포였다.



5. 나를 용서하는 법


우리는 흔히 이렇게 배운다.

“스스로를 믿어라.”

그런데 믿는다는 건

항상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넘어졌을 때 나를 탓하지 않는 일도 포함된다.


나는 오랫동안

‘자기계발’이라는 말에 갇혀 있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성장하지 않으면 멈춘다는 두려움.

그런데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업그레이드로 완성되지만,

인간은 불완전함으로 완성된다.


나는 이제

조금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려 한다.

조금 불안한 마음도,

조금 느린 걸음도 괜찮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다.

쉬어가야만

다시 달릴 힘이 생긴다.



6. 타인에게 박수를, 나에게 숨을


남의 성취에 박수를 치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내 자리에서의 평화를 찾았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남의 성공에 불편함을 느낄 때면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왜 나는 저만큼 못할까” 대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빛날 수 있겠지”

라고 말한다.

그 차이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숨 쉴 틈을 준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덜 노력해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 하루를 버텼다면 충분하다.



7. 관대함의 진짜 의미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은

결국 ‘이해하라’는 뜻이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라는 말은

‘용서하라’는 뜻이다.


이해와 용서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처럼,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도

나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

감정의 상처, 두려움, 미숙함,

그 모든 걸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타인에게 관대하라.
그러나 자신에게는,
최소한의 연민을 허락하라.


그 연민이 무너진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


관대함은 결국

나를 용서할 때 완성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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