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런던으로
이번엔 남동생도 없이 아빠, 엄마 그리고 나 세 명이서 8박 9일에 달하는 런던, 파리 여행을 떠나는 길이다. 워낙 나도 삼십 대 초중반에 여러모로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졌던지라, 이식환자인 엄마와 나를 책임지는 아빠의 신체적 부담(?)이 걱정되었는지 짐꾼으로 참여하지 않은 남동생이 계속 짐의 개수, 무게에 간섭하며 공항으로 향한다.
30분이면 넉넉히 공항에 닿는 우리 동네. 내 고장 인천 베리굿.
“엇, 대한항공에서 카톡 알림 왔는데?”
“뭐라는데?”
“런던 강풍으로 인한 1시간 지연이래. 차를 돌려야 하나”
“그 정도야 뭐, 우선 출발.”
공항에서 기다리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우리 아빠는 아주 잠시 망설이시더니 그냥 돌리지 말고 가자 하신다. 오만 것에 시간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은 우리 아빠. 이제 칠순이 다 되어 가시는데도, 엄마와 아빠의 분쟁의 핫이슈이다. 다시 돌려 집에서 쉬다 가자 하실까 조마조마했지만 우선 공항으로 무조건 go! 런던의 현지 날씨 상황과 뉴스를 보니 gale alert 굉장히 강한 바람 경보가 하루 종일이다. 우리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18시쯤 도착인데, 이미 이른 새벽부터 런던에서 강한 바람으로 딜레이, 결항이 쌓였으니 우리 비행기도 늦는 건 당연 지사!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하며 막 수속을 시작하니, 런던 강풍으로 인해 3시간이 더 연착되었단다. 아고! 이런~~~ 이거 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항공사에서 런던 강풍 이슈임에도 한 명씩 친절히 챙겨 준 인천공항 식음료 바우처로 마음의 위로.
성수기도 아닌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는 3월 평일이다 보니 공항을 아주~한가하다.
딱히 공항에서 즐길 것도 없기에, 바로 모두 라운지로 들어가 1인 1 배낭을 바닥에 두고,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또 부모님과 여행 다니며 비행기 연착되는 상황도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 같다. 그 와중 계속 생기는 우리의 에피소드들. 공항에서 주는 바우처가 라운지 이용도 가능했지만, 요즘은 전 국민이 라운지 이용이 가능한 세상이니 만큼 그냥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입장하느라, 오늘 밖에 쓸 수 없는 쿠폰이 약 4만 원이 남았는데, 아빠께서 굳이 그걸 다 쓰고 싶다며, 라지 사이즈 아이스 라테와 카페의 웬만한 디저트들을 담아 오셨다.
그 라테가 무슨 사단을 만들었냐면, 이륙 시 테이블을 펴지 못하니, 스몰 사이즈용 컵홀더에 꽉 맞게 끼어진 잔을 꺼내며 와자작! 줄어들며 쏟는 것이다. 이제 여행 시작이건만, 내 배낭 아래 제대로 한 컵이 다 쏟아지며, 나는 그렇게 찝찝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비행기의 진상 손님이 된 것 같아 도착까지 우리 쪽 담당 승무원님께 일체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지친 우리들. 집 떠난 지 약 4시간 만에 비행기에 올랐고, 그렇게 약 14시간 30분을 날아가 잔강풍이 남아있는 런던 상공까지 도착했다. 착륙을 앞둔 시점, 잘 내려가다 비행기 기장님의 방송이 들려온다.
“ 현재 런던 상공과 착륙 시 강풍이 남아있어, 30분 정도 착륙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유독 몸이 힘들고 지쳤던 런던 장거리 비행인데, 상공에서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의 30분으로 인해 갑자기 멀미와 메스꺼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14시간 30분 전의 진상짓을 기억하고, 어떻게든 꾹 참고,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15시간 만에 내려 수속 밟고 우버를 부르니 벌써 런던 시간으로 밤 10시가 넘었다.
원래 계획은 숙소에 6시쯤 도착하고, 피카딜리 서커스로 넘어가 저녁 먹고 야경 보며 돌아오는 계획이었건만, 아 그냥 얼른 씻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택시를 타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사우스 켄징턴으로 가는 길은 클래식한 런던스러운 건물들이 거리에 있다. 얼마만의 런던인가, 당시는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넘어와 히드로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이 사실 내 평생 처음인데, 주광색 가로등 불빛에 비친 런던 외과 3-4층짜리 집들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BGM을 틀어주고 있었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