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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봄의 초입에서의 런던

by Beige 베이지


KakaoTalk_20250105_212810099_02.jpg 비틀스 스튜디오가 있는 Abby road 애비로드


피곤함이 역력했던 우리의 런던 1일차. 사우스 켄징턴의 레지던스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밤 10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숨 쉬어지는 공기도 ‘런던’이고,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런던’이다.


숙소는 메리어트 계열 서비스드 레지던스로 에어비앤비 대신 어떤 상황에서 대처가 훨씬 좋은 로비에 24시간 직원이 상주하는 곳을 1번을 두고 골랐다.

체크인 할 때 엄마,아빠의 눈치를 살피니 맘에 드시는 눈치이다. 부활절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유럽인들을 아침 식사 때 만날 수 있었다.

천근 만근 물 먹은 솜 마냥 피곤해도, 우리는 ‘런던’ 땅에 있지 않은가!

열흘 치 짐을 싸서 날아온 우리의 짐 뭉텅이를 방에 두고, 숙소 바로 옆의 TESCO (영국의 홈플러스)로 갈지 말지 잠시 고민한다.


“ 밤 10시가 넘었어. 위험해. 어딜 나가, 그냥 있어. ” 엄마는 한국에서도 해가 지기 전 무조건 집에 들어와야 하는 자신만의 철칙에 맞춰 사시는 분이다.

락 스피릿 충만한 우리 아빠.


“ 걱정하지 마쇼, 얘랑 안전히 다녀올게! ” 하며 아빠와 신나게 장바구니 하나 챙겨 테스코로 향했다.


KakaoTalk_20250111_210530698_05.jpg 런던 테스코의 꽃. 보이는 한 단이 한화 15,000원 정도


외국 마트에 가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입구에 항상 신선하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정말 좋은 가격에 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스터에 맞추어 정말 형형색색 포장지의 초콜릿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오늘은 마트 놀이 전야제니 물과 간식거리를 사 들고 아빠와 숙소로 돌아왔다.



KakaoTalk_20250111_210530698_01.jpg Happy Easter!


이곳이 우리의 4박 5일 집이다. 8평 남짓한 원 베드룸, 거실엔 소파베드용 소파와 주방이 있다. 각자 가방에 챙겨 온 한국인의 비상식량들을 테이블과 주방 선반에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적응의 동물이 아닌 걸까. 시차를 못 이기고 모두 새벽 4시가 되어 눈이 떠졌다. 아빠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어떻게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엄마와 나는 잠옷에 외부를 걸쳐 입고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노란 가로등 빛이 런던스럽게 비추는 담쟁이가 간간히 둘러진 황토색 건물을 보며, 드디어 왔네 라는 느낌으로 한창을 수다 떨었다. 슬슬 새벽을 지나 첫 차가 다닐 시간이 되는 건지, 빨강 2층 버스들이 실내들이 켜 진채 오가고 있다.




KakaoTalk_20250105_212810099_08.jpg 잠시 쉬어 갔던 런던의 파크


우리는 2024년 추위가 가시고 슬슬 꽃이 필 계절을 골라 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반적인 여행이지만, 가톨릭, 개신교 국가들의 3대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인 ‘부활절 (이스터 홀리데이)’ 시즌에 런던에 왔다. 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들이 몰렸냐면 버킹엄 궁전의 철문 기준으로 약 10m의 두께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로 안을 보기 위해 애를 썼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버 택시의 아랍계 택시 기사님께서

“ Whole European people are in London today, I can’t even move. It’s Easter.”

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확실히 19년 전 혼자 밟은 런던 땅과는 다른 느낌이다. 초록 초록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빨강이, 노랑이 예쁜 튤립들과 연못과 공원 잔디 위를 거기는 우아한 백조를 보며, 엄마가 즐거워하셨다. 진짜 오길 잘했네.



문화재 보존. 내 생각엔 문화재 보존보다 더욱 광범위한 ‘도시 보존’이 어찌 잘 이루어졌는지, 그때의 런던과 지금의 런던은 사실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다행으로 부모님과 모시고 다니기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아, 홀로 여행했던 기억의 조각들은 붙여가며 속으로 기쁘고 반가워하며 다녔다. 엄마의 컨디션이 걱정되어 사실 아주 치밀하게 예약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다. 아주 간간히 택시 타고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내셔널 갤러리, 대영 박물관 정도 일정을 잡아두었다.


첫날 아침은 모두 함께 영국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버킹검,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향한다. 하루 일정은 버킹검을 시작으로 빅벤, 내셔널 갤러리까지 슬슬 걸어 20분 이내 이동 가능한 거리들로 묶었다.

KakaoTalk_20250105_212529983_13.jpg 날씨마저 최고인 런던 내셔널 갤러리


도떼기시장 같은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지 못해도 엄마, 아빠, 나 셋이 런던의 공원에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냥 즐거웠다.

요즘 유럽 여행을 키워드로 치면 항상 딸려오는 ‘이슈’가 바로 소매치기이다.

출발 전부터, 엄마는 아빠와 여행 준비한다고 유튜브를 보고 알게 되니, 우리 집 공식 걱정 머신인 엄마는 여행을 취소하고 싶으셨다.

“ 에이, 기분 잡쳤어! 웬 소매치기야? 신경 쓰여서 여행하겠냐고.”

“ 엄마, 우리도 알고 예방하려고 노력하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돼, 그러니 출발 전에 너무 정하지 마, 병난다고.”

엄마의 걱정병은 이미 뭐 우리 가족들은 익숙하다. 차라리 갑작스레 약 4주 정도 계획에서 온 게 다행이다. 아무튼 나도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일본, 대만을 주로 여행 다니며 소매치기는 딱히 신경 써야 할 이슈가 아니었는데, 파리, 이태리를 넘어 요즘은 런던까지 난리라니 신경이 안 써질 수가 없다. 그래도 이거 걱정하다 여행을 망치느냐, 혹시라도 부주의하여 하나 털리고 기분 상해 망치느냐의 문제이므로, 최대한 숨기고, 가리고 일정을 다녔다.


KakaoTalk_20250105_212529983_09.jpg



버킹엄을 나와 슬슬 공원길을 따라 빅벤 쪽으로 향한다. 가는 길의 런던 시그니처 빨간 전화박스와 런던 빅벤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토스폿에 때마침 사람이 적었는데, 사진에 소극적이던 엄마가 먼저 가서 선다. 이게 여행을 효과인 걸까?

엄마가 아이 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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