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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도 놀멍 쉴 멍

분주하지 않게 런던 즐기기

by Beige 베이지

바야흐로 약 18년 전 일이다. 2009년 2월 한창 졸업식 즈음 (아마 그 때도 인터넷이 이렇게 좋았나 보다.) 우연히 검색한 파리행 항공권이 100만원. 게다가 직항. 이건 안 갈수 가 없는 딜이라 대학 졸업식을 패스하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조건이 최적이었던게 파리에 엄마,아빠의 오랜 친구이자 한 때 윗집 언니였던 나와는 일곱 살 차이나는 언니가 홀연 단신 파리로 넘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했었고, 나는 그 기회를 잡아, 한창 파리의 회색 하늘, 축축함이 지나쳐 살짝 우울함이 감도는 세느강변의 퐁네프다리와 노트르담이 보이는 그 겨울의 파리가 로망이었는데, 겨울의 끝자락에 파리를 가게 되었다. 간 김에 파리 2주 살이 중 3박 4일을 유로스타 타고 런던에 다녀 왔었다.


사회생활 시작하며 가까운 도시들을 주로 다녔던 이삼십 대.

딱히 재테크, 부동산, 주식 등에 소질은 없을 것 같던 그 시절 (지금도 전혀 없다) 소위 경제 대국이라 불리는 곳들은 궁금했다.


아주 때마침 나는 따뜻한 햇볕 아래서 즐기는 남국 휴양지보단 복잡한 도시에서 매일 적어도 만보씩은 걸으며 골목 구석구석 누비며 소품집이나 조용하고 지극히 내 취향적인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복잡하나 여전히 런던스러운 런던은 나를 행복하게 반겨주었다.

부모님께는 설레는 첫 런던이나, 사실 나에겐

'기억을 더듬어 가는 시간' 같이, 혼자 런던에 왔던 2009년 2월의 추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어제도 예뻤고, 오늘도 예쁜 런던 골목길"


걷기에도 정말 좋았던 2024년 이스터 홀리데이 시즌의 런던의 봄날.



어느 날의 일정은 런던에서 잊지 말고 꼭 방문해야 할 1순위 '포토벨로 마켓'에서 시작했다.


여린 연둣빛의 새싹을 머금은 거대한 가로수들이 예쁜 사우스 켄싱턴 숙소에서 우버를 타고 약 10분 정도 이동했다. 부모님과의 유럽여행의 필수는 우버 택시인데, 이유인즉슨,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불필요한 체력소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장장 1km 정도에 달하는 포토벨로 마켓플레이스를 둘러본다.


빈티지 주방용품들, 골동품 카메라, 안경 그리고 정말 예쁜 그림들 등등 수백 가지의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빈티지 소품을 좋아하시는 엄마와 마켓의 바이브가 신나셨는지 아빠의 표정도 좋다.

이번 여행 가이드인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여기저기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보였고,

각 스탠드마다 들러 하나씩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은근히 재미있는 전 세계 음식들이 있는 것 같은 푸드, 빵, 디저트류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들은 바라만 봐도 즐겁다.스페인 빠에야, 멕시칸 타코, 2009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굳걷히 지키고 있는 홈메이드 베이커리까지 뭐 하나 신나게 하지 않는 건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내가 왜 이 먼 영국까지 날아와서 날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빵집에 코 끝이 찡한 걸까.

휴학 한번 안 하고, 셀프 졸업여행을 왔던 그 스물셋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아님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 준 빵집에게 감격한 것일까?





런던여행이 결정되기 전부터 한 번씩 이 마켓이 그리워 유튜브에서 일부러 '포토벨로 마켓'만 검색해서 보곤 했는데, 여전히 다시 봐도 눈을 어디에 두어도 예쁜 것들만 가득했던 포토벨로 마켓이다.


이곳을 부모님과 오게 되어 더욱 행복하다. 다만 그 예전 멋지게 더블 베이스 버스킹을 하던 재즈 밴드를 볼 순 없었지만, 내 인생 두번째 포토벨로 마켓의 추억이 기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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