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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07. 2023

조사기구가 더욱 독립적이려면?

내부자로서 바라본 사참위 조사기구의 문제점과 제안

사회적 참사특별법(이하 사참위법)이 통과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된다. 사참위법에 따라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위원을 임명한다. 준비단 활동이 시작되고, 이후 법 시행령이 마련되면 사무처를 구성하고 직원을 채용한다. 여기에는 부처에서 파견받는 공무원이 포함된다. 


직원(조사관 등)이 채용되면 사전 조사를 통해 직권조사 과제를 준비한다. 조사 과제와 조사 준비가 되면 위원회는 조사개시를 의결한다. 조사개시 의결로 본격적인 조사활동이 진행된다. 이후 조사 활동의 결과를 담아 조사결과보고서가 작성된다. 위원회가 최종 조사결과보고서를 채택 의결한다. 의원회는 조사결과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외적으로 공개한다. 위원들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다.     


사참위는 조사위원회이므로 위원장과 위원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진다. 위원은 위원장 1명, 상임위원 4명, 비상임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모든 위원들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상임위원들은 각각 소위원회를 맡아 조사업무를 지휘한다. 위원들이 참여하는 회의는 전원위원회와 소위원회이다. 사무처와 4개국이 사무와 조사업무를 담당한다.


본 글은 사참위 내부에서 실무자로 일한 경험에 근거하여 조직 내부 운영에 대한 평가 담았다. 조직 내부 이야기이므로 다소 멀게 느껴지고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개인적인 평가의견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용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작성한다.

     



2018년 11월 임명장을 받고 일주일 정도 공무원 소양교육과 조사 업무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았다. 조사개시일이 12월 11일이어서, 그전에 직권조사 과제를 무엇으로 할지 정해야 했다. 우리 과(가습기살균제안전과)는 첫 공채에서 조사관이 다 채용되지 않았다. 재발방지 분야에 응시율이 낮은 것은 의외였다. 첫 공채 당시 근무기간이 1년이었고, 연장되더라도 2년인 한시기구였다. 업무가 ‘가습기살균제참사’와 관련된 유해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생활화학제품의 안전 관리 분야였다. 자격이 된다 해도 한시기구였고, 분야도 낯설어서 응시까지는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과는 4개의 직권조사 과제를 선정했다. 정부는 2016년 국회 국정조사 지적사항들을 반영하여 해당 분야에 대한 제도개선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사과제 선정 당시 유해 화학물질과 해당 물질을 함유한 생활화학제품으로 한정하고 깊게 볼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넓게 보고 포괄적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그동안 정부의 제도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서, 조금은 범위를 넓게 잡고 거시적인 쟁점을 도출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화학물질 안전, 화학제품 안전, 기업의 역량과 책임, 사업장 화학사고 예방과 대응을 과제로 선정했다. 이러한 과제 설정 방식이 적정했는지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사참위는 사전 준비기간 1개월을 거쳐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사관 채용 후 1개월 만에 직권조사 과제를 선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가장 적임자들이 채용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소한 2, 3개월 정도의 사전 준비기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촉박하면 준비가 부실해질 수 있다. 한 번 결정된 사항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다. 채용된 조사관들의 경우도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고 있다. 공채이므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채용 과정에서 적임자를 선발한다고 해도, 누가 들어오든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문성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조사 과제의 여러 사안을 파악하는 데도 편차가 있을 수 있다. 조금 늦더라도 팀워크를 구축하고 사안을 충분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사참위는 두 개의 참사를 조사했다. 위원장은 위원들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주재하며,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 4명의 상임위원이 각각 한 개씩 소위원회(가습기살균제진상규명소위원회, 세월호참사진상규명소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회, 피해지원소위원회)의 소위원장을 맡았다. 상임위원은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이었다. 사무 집행체계로 사무처장이 있었고, 조사를 담당하는 4개 국이 있었다. 각 국은 소위원장의 조사지휘와 사무처장의 사무 지휘를 받았다.  


이런 체계는 큰 틀에서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실무를 담당하는 국·과의 입장에서는 소위원장의 조사지휘와 사무처장의 사무지휘를 받는 이중 지휘체계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잘 되면 좋은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옥상옥'이다. 조사 지휘와 사무 지휘가 구분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혼선이 야기될 수도 있다. 


조사기구의 업무가 조사와 일반 사무로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령, 구분된다 하더라도 구분하는 것이 효율적 인지도 의문이다. 조사의 지휘체계가 위원장, 사무처장, 각 국·과로 일원화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면 조사 지휘와 집행이 훨씬 일사불란하지 않았을까.       


상임위원들이 조사국에 대한 지휘권을 갖는 것은 혼선을 낳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상임위원들은 각 정당 추천에 따라 임명되었다. 상임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조사 지휘의 '리더십'이 달라질 수 있다.(리더십은 정치적 성향이나 배경이 조직 운영에 은연중에 표출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거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직체계가 독립적인 조사기구의 위상과 성격에 부합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소위원장이 조사국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지휘권을 갖는 대신, 회의체인 전원위원회와 소위원회 활동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의사결정과 집행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참사가 하나의 조직체계로 통합된 것이 아니었다. 두 참사가 각 국(진상규명국, 안전사회국, 피해지원국)으로 구분되어 운영되는 조직체계였다.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국과 세월호 진상규명국은 각 참사별로 구성되었고, 안전사회국과 피해지원국은 두 참사가 합쳐 운영되었다. 진상규명이 피해지원과 안전사회로 통합되어 있지도 않았다. 


즉 사참위는 참사별로도 구분되었고, 각 국별로도 칸막이가 만들어져 있는 모양새였다. ‘부처 칸막이를 없애자, 관료제를 극복하자.’면서, 정작 사참위 내부가 칸막이로 나눠져 있었다. ‘운영의 묘’를 살리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칸막이는 한 번 설치되면 더욱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부터 가습기살균제참사와 세월호참사를 별도로 구분해서 참사별로 조직체계를 구성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즉 참사별로 진상규명, 피해자 지원, 재발방지를 통합(단일) 조직체계로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참사에 대해 원인조사와 재발방지, 피해지원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참사별로 통합적으로 연계해서 조사하고, 다른 참사의 교훈이나 조사 방법 등은 위원회 차원에서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사참위는 법으로 조직체계가 규정되어 있어 조직체계 변경도 어려웠다. 경직된 조직 형태였다. 어느 조직 형태나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사참위 조직 체계가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사참위 내부에서는 조직체계와 별도로 참사별로 서로 논의도 하고 교류도 했다. 다만 조직체계를 달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현해 본 것이다. 조직도와 같은 그림 없이 일방적으로 글을 작성한 점, 내부의 이야기를 굳이 거론한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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