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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09. 2023

몇 가지 질문들

제도개선에 대한 질문과 문제의식

지금까지는 피해대책 활동을 해오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한 것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가습기살균제참사에 대한 ‘사회적 교훈’은 무엇일까. 이 참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전편 서두에서 이 참사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참사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환경사고, 환경보건사고, 공중보건 사고, 유해 화학물질 사고, 생활화학제품 사고, 소비자제품 사고, 독성물질 중독사고, 독성사고, 기업의 탐욕이 부른 사고, 다국적기업에 의한 사고, 안전불감증이 부른 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부른 사고, 사각지대에 의한 사고,…’ 등등. 이 참사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원인이나 해결의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사고의 성격이나 개념 규정이 달라질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에 당시 유공(현 SK케미컬)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이 참사가 알려진 2011년 8월 31일을 기준으로 하면 ‘참사의 시간’은 대략 17년이나 된다. 이 기간 동안 여러 제조사와 판매사가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했다. 특정 업체의 제품이 어떤 건강피해를 일으켰는지를 두고 아직도 다툼과 논란이 있다.      


우리는 ‘참사의 시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봐야 할까.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가령, 참사의 시작점을 공식적으로 첫 사망사례가 보고된 시점으로 할지, 제품이 개발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지와 같은 문제들이 있다. 참사의 종료점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건이 처음 드러난 2011년 8월로 할지, 최종적으로 제품 사용중지와 회수명령을 내린 2011년 11월로 할지의 문제도 있다. 아직도 후유증 등 건강피해가 이어지고 있으며, 건강피해와 구제에 대해서 미해결 된 문제들과 논란 중인 이슈들이 있으므로 ‘현재 진행 중인 참사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따라서 ‘참사의 시간’을 정하기 위해서는 시작점과 종료점에 대하여 더 면밀한 검토를 거친 후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할 문제이다. 참사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문제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문제만큼이나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여 참사의 해결은 진상규명, 피해 해결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대해서 참사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내는가에 달려있다. 특히 건강피해 구제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 참사의 교훈과 기억에 대해 피해자들이 납득하고 수용하는 사회적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진행사항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2011년 8월 원인 발견, 2016년 검찰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2017년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사과, 2018년 사회작참사특별조사위(사참위) 활동이 진행됐다. 국회는 2016년 국정조사 결과를 반영해 해당 참사를 “유해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생활화학제품에 의한 사고로 규정”했다. 정부는 환경부를 주무부처로 지정해서 피해구제를 진행하고 있다. 유해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제도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문제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었고, 가동되고 있다.




이로써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어느 정도 진척됐다고 볼 수도 있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볼 수도 있다. 가령, 그동안 진행된 사안들에 대해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이 참사의 원인을 유해 화학물질 관리실패에 초점을 둠으로써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환경부의 문제로 국한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 경우 환경부 소관 화학물질과 생활화학제품의 안전관리 개선이 주요 대책으로 제시되겠지만, 반면 다른 부처 소관 분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소홀하게 다뤄질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할 수 있다. 이 참사는 여러 부처에 걸쳐 발생한 문제였다. 원인에 대한 책임과 문제 해결을 주관하는 주무부처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관련 부처들 간에는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사고 당시에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가정용 생활용품)’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공산품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소관이었다. 그러나 ‘관리대상 품목’에 해당되지 않는 ‘비관리 제품’, 즉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이는 산업부가 공산품을 관리(소관)하지만, 관리의 책임을 지는 것은 공산품 중 지정된 ‘특정 품목’에 대해서만 한정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눠질 수밖에 없다.      


가습기살균제를 공산품의 관리대상 품목에 ‘마땅히 포함했어야 했다.’는 주장과 ‘포함하지 못한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라는 반론이 있다. 이러한 접근과 논리는 환경부 소관 유해 화학물질 관리 실패에 있어서도 유사했다. 당시 법에 근거하여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서 ‘마땅히 관리했어야 했다.’는 주장과 ‘불가피하게 관리할 수 없었다.’라는 반론이 있다. 전자의 입장은 ‘적극행정이 필요했다.’는 입장으로 행정의 직무유기를 지적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후자는 도의적 책임,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법적 책임을 묻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사 이후 정부는 유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였고,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된 화학제품, 특히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화학물질 함유제품을 ‘생활화학제품’으로 분류하고, 이 제품에 대한 관리를 산업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했다. 화학물질 관리의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활화학제품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해서 환경부는 처음으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관리 권한을 갖게 되었다.      


산업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관리하던 공산품의 일부를 환경부에 내어줌으로써 일부 제품 관리에 대한 권한을 ‘뺏긴’ 경우였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환경부에 뺏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넘겨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골치 아픈 제품을 넘긴 것일 수도 있고, 참사 원인에 대한 부처 내 책임소재 시비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정 입장에 따른 ‘해석’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부처 간에 쟁점과 이해관계 다툼이 있는 사안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이 참사를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의 관리 문제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공산품과 같은 제품 관리체계 전반의 문제와 소비자 안전문제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화학물질에 중점을 둘 경우에는 환경부가 주무부처가 되고, 공산품 등 제품관리의 문제로 볼 경우에는 산업부가 주무부처가 된다. 소비자 피해와 권리문제로 본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될 수도 있다. 건강피해와 질환의 문제로 볼 경우에는 복지부를 주무부처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부처와 관련되는 사안이므로 국무총리와 같은 범부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주무부처를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문제해결의 시나리오가 달라질 수도 있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논쟁이 가능한 이슈이다.       




2016년 국정조사에서 국회는 유해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화학제품의 안전 관리, 소비자제품 관리와 사각지대 문제, 소비자 안전과 피해 문제 등 여러 이슈와 쟁점을 점검했고, 관련된 여러 부처의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국회와 정부는 국정감사 등의 결과를 토대로 이 참사의 소관 부처를 환경부로 지정했다. 이 참사를 유해한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생활화학제품에 의한 바이오사이드 사건, 즉 환경보건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이 참사는 ‘화학물질’ 특히, ‘유해한’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실패한 사건이었다.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유해한 화학물질의 안전관리에 실패한 사건이었다. 생활화학제품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소비자제품’이다. 즉, 이 참사는 소비자제품인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중 유해한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실패한 사건이므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참사의 교훈일 수 있다.      


덧붙여 유해한 화학물질은 제품을 통해서 노출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사용하는 여러 현장에서 노출될 수 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대한 기본 원칙과 철학을 재정립하고, 그에 합당한 화학물질과 화학제품 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고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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