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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10. 2023

‘야생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길들지 않는다>를 읽고

그런 의심이 든다면 거울을 쳐다보면서 당신의 얼굴을, 눈빛을 유심히 관찰해 보기 바란다. 야생동물의 얼굴과 눈빛인가. 하물며 참새와 꿀벌과 개미도 생기에 차 있는데, 그런 생기와 무관한 생애를 산다는 말인가.
인간이란 추억이라는 즐거움에 젖기 위해 애써 추억을 만들며, 그렇게 사는 인생을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 소극적인 생물이란 말인가.(p.161)     


나는 말을 위한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글로 자립한 젊음과 내면의 반란을 부채질하는 자이다. 본인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개인의 정신을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자이다.
‘진정한 혁명은 개인으로부터.’(p.190)     


일본의 소설가 무라야마 겐지가 쓴 <나는 길들지 않는다>(바다출판사)의 일부이다. 이 책의 부제는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이다.      




작가는 잠깐 회사생활을 하고 이후 소설가로 전업해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영혼이나 정신을 꿋꿋하게 지켜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만큼이나 ‘야성(野性)’이 묻어난다. ‘노예근성을 경계하라.’라는 작가의 지적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고, 어딘가 모를 불편감이 생기기도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어느덧 잊고 살고 있는 자신을 본다.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것이 범부의 삶이다. 꼬깃꼬깃 일상이기 쉬운 삶이다. 자신의 영혼이나 정신쯤은 집에 두고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것이 삶의 기술(방편)이고 지혜이다. 가끔 양심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삶을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때론 본능에 가깝다. ‘페르소나’는 무죄이며, 삶의 기술이다. 그 비밀병기를 닦고, 기름 치고, 조이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붙들고 살기에는 삶이 너무 고달프다. 삶의 영역을 잘 구분해서 겹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뭐라던 자신의 삶은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책의 작가처럼 삶의 전부 혹은 상당 부분을 ‘꼿꼿하게’ 세우고 사는 일은 범부들에게는 쉽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부럽다. ‘자립하라’고 하는 작가의 주장과 요구. 누구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나. ‘어떻게’라는 방법 앞에 속수무책일 뿐. 작가는 자립하는 삶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믿고 ‘밀고 가라’고 말한다. 물론, 작가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젊은이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어떤 단면을 향해 지적하고 따갑게 꼬집는 ‘외침’ 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에 힘을 주어야 하고, 그 글이 힘을 가질 때 독자들은 반응한다. 즉 진정성을 갖는 작가의 말은 힘을 갖는다. 독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에 대해 반응한다. 쭈볏쭈볏할 수도 있고, 한 눈을 가리고 반응할 수도 있다. 외면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 안내한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가야 한다고. 쉬운 길로 가려는 노예근성을 직시하고, 자신의 야성을 찾아 떠나는 길이어야 한다고. 외로운 늑대의 근성을 갖고 군중 속에서 함께 머물되 노예로 살지 않는 길, 곧 ‘자신의 길’을 가라고 한다.   

   



‘막다른 길’에 서있다. 막다른 길이라고 말하는 이는 ‘자신’이다. 치열함을 호출하기 위한 방편이다. 자신이 보는 세계는 얼마만큼 일까. 둥근 지구의 어느 편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보고 막다른 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보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유연함일까, 치열함일까. 보는 대로 보는 것을 그치고, 스스로 보고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야생의 삶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야생이 발화점이 되어 집단지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잃어버린 혹은 내가 미처 찾지 못했던 그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곳은 시민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쳐 나는 곳이 아닐까. 구차하고 누추한 곳이 아닌, 그 어느 곳일 것이다. 그곳은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과 굴하지 않는 정신이 작동하는 세계일 것이다.      


자신을 긍정하고 세상을 긍정하는 곳일까. 자신과 세상을 부정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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