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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04. 2023

이성의 끈이 끊어지던 날 -2부

후회했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잠이 안 온다. 한바탕 울고 났음에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더 불편해져 잠이 오지 않는다. 원래의 나라면 울고 난 후 감정을 토해낸 김에 잠이  들어야 정상인데 오늘은 그마저도 힘든 밤이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나지막이 내 숨소리만 들린다.


마치 나 혼자만의 잘 못인 거 같아 짜증 난다.  웬만해서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했다. 언젠가부터 그런 감정 표현들이 너무도 창피했다. 화가 났음에도 꾹꾹 눌러 담고, 누구의 인성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래야 당분간이 편하다고 혼자 되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조금 한 구멍으로 삐집고나와 사람들 앞에 쏟아지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 못된 것일까?'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초겨울 조금은 늦은 동이 트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밤을 새우고 말았다. 예민증이 또 돋아 난 거 같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 문제없다는 듯 다시 일터로 향할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오후 출근이라 아침에 여유가 된다. 누워있어 봤자 잠은 오지 않고 분명 피곤해서 머리만 아플 것 같아 9시쯤 운동복을 챙겨 집을 나섰다. 1시간을 쉼 없이 뛰고 온몸에 땀을 내고 보니 어제의 일이 조금은 멀어진 과거가 된 듯 가벼워졌다. 조금씩 마인드 컨트롤 범위로 다시 들어오는 기분이랄까?  집에 돌아와 바로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새벽의 쓸데없는 사유를 잊게 해 주었다. 조금씩 아득해지는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어제의 일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일 때쯤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하루정도는 푹 쉬었어야 했다. 팀장으로서의 책임감, 엄마로서의 의무감, 나를 의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내 시간을 쪼개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고 해 나갔을 뿐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 과부하가 걸렸던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제스처가 그저 내가 확대해석하고 오해해서 무례한 행동으로 정의되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상대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의 눈빛엔 나에게 공격하려는 고의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생각은 없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올랐다. 시계를 보니 출근까지 2시간 남짓 남았다.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찾고, 문자를 써 내려간다.


"예민한 상태였던 제가 당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쁘게 받아드려 미안해요. 당신의 마음을 알기에 제가 먼저 손 내밀어 봅니다.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그럼 팀장이 될게요. 우리 앞으로 더 맞춰가며 잘해봐요."

 문자를 보냈다고 해서 어제의 감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를 후회하던 시간보다는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떤 관계든 선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과 아직은 경계에 있는 사람. 전화통화가 편한 사람과 문자가 편한 사람. 둘이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내 말을 다 전할 수 있는 사람과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사람.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이런 선이 나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이 선이 험난했던 20년 동안의 관계 속에서 나를 지켜준 기준이기에 더욱 명확하게 바운더리를 정비한다. 잘 웃고, 농담 좋아하는 사람이라 조금은 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어떻게 보면 좀 어려운 사람이다.


"죄송하지만 저 쉬운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 한 발 뒤로 물러서 주실래요?"

상대는 뜨끔해서 뒤로 물러셔며 내가 정해준 바운더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다.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 표독스럽게 말했던 것에 대해후회한다. 아무런 예고 없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상대의 눈빛을 보니 상처받은 눈이었다. 나 역시 잘한 것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상대에게 내 선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당분간은 평화를 유지해 나갈 것이고 조금씩 서로에게 신뢰를 쌓아갈 것이다. 그거면 어제까지의 일을 잊고 나아가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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