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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Nov 30. 2023

이성의 끈이 끊어지던 날-1부

무엇을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책을 많이 읽게 된 후로는 일터와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깊게 그리고는 길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라 그래.’ ‘아 그렇구나.’ 등등의 생각들로 좀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무엇이든지 심각하게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내 자존감은 나날로 바닥을 쳤고, 못난 자존심을 부려 방어적인 모습들을 늘 고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질병처럼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다. 가령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고 '나를 지금 무시하는 건가?' 확대 해석을 한다거나, 연락을 먼저 안 하는 친구를 두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라며 망상에 가까운 생각들을 했다. 그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결국 나 스스로 좀먹는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이 문제를 벗어날 방법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무언가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취미를 갖는 다면 생각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하던 차에 '책'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독서라는 취미와 일주일에 세 번 운동을 하며 온몸에 땀을 내보기로 했다. 격하지 않고 약속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이 방법들로 문제에 있어서 사고의 전환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키우기보다는 그 상황을 인정하며 조금은 심플하게 넘길 수 있었다. 나에게 꼭 맞는 취미들로 다시 한 단계 성장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맞히고 다음 레벨로 넘어간 느낌이랄까? 이렇게 나는 어른이 되고 여물어 가는구나 싶었다.


 이번 찾아온 스트레스도 '책'을 통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난을 이겨낸 흑인 여의사의 에세이를 읽으며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다잡고, 말에 대한 책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 궁지로 몰아넣는 반복되는 스트레스가 매일 나를 괴롭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피할 도리가 없었다. 또다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턱” 막히는 숨에 가슴이 조여왔다. 꼬여만 가는 상황 속에서 모든 말과 시선이 아니꼬워졌다. 그러지 말라고, 나는 이미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또 내 스트레스에 무릎을 꿇은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런 마음은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 말투는 다시 공격적으로 변했고, 눈은 매서워졌으며, 안색은 어두워졌다. 누가 봐도 나는 지친 상태였다. 그런나를 보던 타인의 걱정 섞인 위로에도 내 못난 자존심은 괜찮다며 애써 등을 돌리며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되니까 조금만 참아보자.

지금 내가 힘듦을 인정하면 결국 못난 것을 인정한 꼴이 되니까 좀 더 강한 척해 보자.'

안타깝게도 끈을 강하게 부여잡으면 잡을수록 상황은 꼬여만 갔다. 내 말엔 가시가 돋쳐있었던 것이다.


"툭"

나도 모르게 또다시 부여잡은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

"제가 만만해요? 선을 넘지 말았어야죠. 저도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네요."

고의가 섞이지 않은 상대의 말임을 알면서 애먼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표독스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그동안 애써 쌓아 왔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내 말에 상처받은 상대의 눈을 보며, 내적으로 후회했지만 그것은 이미 늦은 때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힘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런 마법 같은 기술이 없었고, 나이 38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차올랐다.


 상대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에 나를 위로한다. 내 이성의 끈을 그 사람이 끊어놓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은 나에게 미안함을 표현한다. 이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모든 것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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