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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11. 2023

혼자를 즐기는 방법

더이상 혼자는 우울하지 않다.


간만에 약속도 없이 혼자 쉬는 날, 누구라도 만나고 싶지만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 먼저 연락을 주면 좋으련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외로움에 허전했던 마음에서 우울함 반, 화남 반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연락해 주면 좋을 텐데 나에게 소중한 그들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것일까?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럴 때 연애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흔한 썸조차도 환승이별을 당한 후로 2년 동안 조용하다.

 이게 이렇게 비참할 일인가 싶어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를 검색해 본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아니, 누구에게 연락해야 거부당하지 않고 오늘 흔쾌히 나를 만나러 나와줄까? ’에 가까운 검색이다.


'둘이서 만나기엔 좀 어색한데, 우선 패스.'

'전에 연락했을 때 별일 없으면 만나자고 했어. 내가 우선순위는 아니란 얘기잖아. 패스!'

'어제 놀러 갔던데, 오늘은 쉬고 싶겠지?'

'저번에 만나자고 했더니 바쁘다고 했어. 이번에도 안된다고 할 것 같아.'


 한 참 만에 핸드폰을 덮었다. 만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어쩌면 나를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부인 것 같아 포기했다에 가깝다. 이제 겨우 11시다. 하루가 지루하게 지나가는 게 영 길고 버겁다.


 25살, 엄마 아빠 집을 나와 나 혼자 독립한지 이제 겨우 3개월차라 그런지 혼자만의 시간이 아직도 익숙치않아 난감하다. 전쟁같은 유희를 즐긴 다음날 충전의 의미인 ‘혼자’는 영광의 재충전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영광의 시간이 아닌 맨 정신에 맞이한 혼자만의 시간이라 그런지 뭔가 패잔병 같은 느낌이다. 좁은 원룸에 혼자 해 먹을 것도 없고, 주변에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은 두 블럭이나 걸어가야한다. 근처에 있는 거라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조금한 슈퍼마켓 뿐이다. 어차피 나갈것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먼저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오전 내내 결국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매주 바쁘게 지내다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은 나를 우울의 늪으로 강하게 끌어드렸다.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듯 하지만 실제론 의미 없는 서핑만 할 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이제 막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더 이상은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기로 한다. 가방도 없이 카드지갑만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 곳, 혼자 있는 나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그곳으로 간다.


 세 정거장 만에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화려한 건물에 반해 내 모습은 초라하다.

‘옷이라도 잘 입고 나올걸 그랬나?’

 그렇지만 괜찮다. 나의 목적지는 백화점이 아니었으니 괜찮다 싶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쇼핑상가 쪽으로 내려 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좀 멀다 싶을 때 쯤 목표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좀 전 보다는 빠른걸음으로 그 곳을 향해 걸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큰 숨을 들이킨다.

 비릿한 새책의 향을 맡고 나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마치 허리를 조이던 옷을 벗어던지고 파자마를 입은 듯 시원한 날숨이었다.

 약간의 소음이 섞여 적당히 조용한 이 큰 서점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누구와 왔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향한 걸음에 묘한 안정감이 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눈에 띄어 한 권 집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저 구석 방석이 놓여있는 자리가 아직 비워져 있어 그곳으로 향한다.  얼마나 읽었을까?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행이다. 나를 신경쓰지 않음를 확인하고 읽던 책에 다시 집중하기로 한다. 오전내내 눈물을 뽑아내던 우울감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내 안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더 지났을까? 징- 하고 핸드폰 진동이 느껴진다. 친한 언니의 이름을 확인하고 메세지를 읽는다.


"어디야? 우리 커피 마시러 갈래?"





 


 13년 전, 타인과의 만남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때그들의 반응에 따라 내 자존감의 수위는 요동쳤다. 나를 먼저 찾아줄 때 내 기분은 하늘을 날듯 했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날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럴 때 마다 나 스스로 더욱더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그때 내 자존감은 정말 낮다 못 해 땅에 붙어 있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아니면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더욱 그랬던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소모적인 나와의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핸드폰을 시간 때마다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몸을 움직여 책을 찾아갔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내가 깨어 있음을 확인하고,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책이 내 인생을 바꿔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을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을 때 비로소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혼자를 즐기게 되었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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