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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14. 2023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오늘 끝나고 한 잔 해야겠다. 와 스트레스받아!! “


별안간 짜증을 확 부리는 환자에게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으로는 오만가지 욕을 토해내고 있었지만나는 그 사람의 힘든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도와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에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계속된 무례함에 나에게도 한계가 온 것이다.

 “환자분 하시는 얘기는 원장님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원장님과 하실게요.”

 말하곤 뒤돌아서 차트에 히스토리를 작성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잘 못한 게 없다는 생각에 약이 올랐다. 마침 지나가는 윤정에게 저녁 술타임을 제안했다.(약속은 부담스럽지만 번개는 좋아한다.) 다행히도 윤정은 흔쾌히 OK사인을 준다.


 “500cc 두 잔이요!!”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넣고, 입으로 닮을 수 있는 온갖 쌍스런 표현들로 토해냈다. 말할수록 화가 난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나의 화는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알 수 없는 묘한 답답함에 의문스러워 그런가 물속에 있는 듯한 답답함에 술을 들이켰다.  얼마나 마셨을까? 술은 술을 부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다음날 전신 스트레스가 되어 온몸 구석구석을 알코올에 절여져 배로 돌아왔다.




 어느 날부터 술은 스트레스받는다고 찾을 음료(?)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니 스트레스를 입으로 털어내면서 분위기에 취해 술을 들이켜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무엇을 위한 술자리인지 모르겠다. 물고 씹기 위한 자리인가? 입에 담지 못할 은어들로 내 수준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자리인가? 차라리 내 속이라도 편하면 좋은데 그마저도 아니니까 내 마음이 마이너스 일 때 술자리 가질 이유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명확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술을 먹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땐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너무 힘들 때 누군가와 험담을 하느니 차라리 가족에게 하소연하기로 했다.


“오늘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 줄 알아?”

나를 오래 봐온 이서방은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 내가 숨을 고르는 사이에 한 마디 한다.

“그건 아니지. 나라도 화나겠다. 참나. 그래 당신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었겠다.”

흠. 이 정도면 썩 괜찮은 대답이다. 이거면 됐다. 밖으로 새나갈 걱정 없는 이 정도 하소연 수준의 험담인데도 퍽 시원해진다.

“막걸리 한 잔 따라줘 바.”

나의 명령조에 남편은 재빨리 잔을 채운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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