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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Dec 18. 2023

엄마는 왜 화만 내?

너의 말

"집에 오면 얼른 씻어야지. 왜 오자마자 그러고 있는 거야? 몇 번을 말해. 집에 돌아오면다 옷 걸어놓고, 가방 걸어놓고, 씻어야지."

 12시간 만에 만난 아이와 기분 좋은 재회는 잠시뿐이었다. 시간대에 맞춰 아이들이 해줬으면 하는 행동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자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속사포 같은 소리들을 쏟아낸다. 첫째는 안 들리는 척 한 귀로 흘려보낸 것 같고, 둘째는 눈치를 보며 느린 걸음으로 하나씩 제자리에 거는 시늉(그마저도 잘해놓지 않아 뒷손이 가게 만든다.)만 겨우 할 뿐이다.

 

'아,속에서 천불이 올라온다고 하는게 이거구나‘


"지금 뭐 하는 거야? 엄마말 안 들려?"

별안간 내려치는 벼락같은 화에 아이들이 움찔 놀라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본다. 그제야 귀가 뻥뚤린 첫째는 비교적 만족스럽게(?) 외출복 정리를 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럼 둘째는? 싶은 생각에 돌아보니 아이는 빤히 나를 바라보다 한마디 한다.

"엄마는 왜 화만 내? 우리가 반갑지 않아?"

 윽, 당했다. 저 상처받은 눈빛이 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아이의 얼음송곳 같은 말이 내 가슴에 박혀버렸다. 그제야 아이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을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아니, 엄마는 너희가 얼른 씻고 편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계속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으니까, 손도 더럽고, 또 이러면 엄마아빠는 너희 뒤만 졸졸 쫓아다니다...."

졌다.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내가 들어도 치졸한 말들일뿐이다.

"화내서 미안해. 이제 씻으면 좋을 것 같은데 별님이 생각은 어때?"

"아까 엄마말 안 들어서 미안해. 옷 걸어놓고, 씻고 올게 엄마."

휴... 밖에서는 그렇게 친절하고 좋은 팀장이 되고자 청유형 말을 연습하면서 집에서는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인지, 또 망각하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화를 내었다. 나는 왜 가족에게 친절한 일관성이 안 되는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 잠시 멍하니 앉아있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차라인에 맞춰 주차한 후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 여유가 된다. 시동을 끄고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의 일들을 생각한다. 어제 했던 일, 실장님께 보고해야 하는 일 그리고 오늘 할 일들을 곱씹어 볼 때쯤 다른 직원의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온다.  그제야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조수석에 있던 팀장 가면을 찾아 쓴다.  관대한 팀장이라는 가면은 병원 주차장에서 타인을 마주친 순간부터 필요하다.

"팀장님 오늘도 일찍 도착하셨네요."

"그러게요. 오늘도 우리 파이팅 해요.ㅎㅎ"

상대를 신경 쓰는 가식스러운 대화가 오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려 노력한다. 아침에 만나는 내 모습이 무기력하면 상대가 내 컨디션에 대해 눈치 볼 수도 있기에 애써 밝은 척한다. 다행히도 이런 나를 마주한 직원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며 일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웃고, 의견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봬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시동을 걸고 옆에 팀장 가면을 내려놓는다. 가면을 벗고 나면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냥 다시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뿐이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5분 정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게 있어서 제일 편안한 그 시간을 만끽하다 조금 아쉬울 때쯤 집에 도착한다.

 병원주차장과 달리 집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내 손에 가면이 들려있지 않다.



  

집이 아닌 일 터에서는 타인을 신경 쓰느라 애쓴다. 한 가지 말을 내뱉을 때 상대의 표정을 파악하고, 내가 다음 말을 내뱉을 때는 돌아올 말에 대비한다. 그러다 보니 눈치 빠른 팀장의 위치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주 당연하듯 나를 마주하는 가족들에게 바깥생활에서 민감하게 돌려대던 레이더를 꺼버린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래놓고 저 혼자 후회하고 스트레스받는다. 어차피 후회할 거 일터에서 처럼 먼저 생각하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도 힘들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많은 심리학 책과 육아책이 그런 내 행동에 대한 반성과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고찰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10살이 안된 아이들과 더 부대끼며 존중하는 법을 미리 연습해야 사춘기 쓰나미 피해가 적어진다고 했다. 오늘 나는 아이에게 지적당했으니까 당분간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를 정리한다.  


"여보, 양말 좀 세탁기에 갖다 놓지?!"


아! 이서방, 당신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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