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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Jan 11. 2024

가짜웃음 #1-4

안녕.

 12년 전 그때의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잊으려 노력했지만 잊히지 않던 일들이 오래된 영화를 본 것처럼 흐리멍덩한 상태의 장면으로만 떠올려질 뿐이다. 12년 동안 깊게 새겨진 흉터 같은 일이 이렇게 지워져 간다는 것이,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 건가? 신기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더듬어 본다. 아직 가면이 완전히 흡수된 것은 아닌지 촉촉한 느낌은 여전하다.

'아!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면을 쓴 지 10시간 정도 지나고 있었다. 정말, 이 미소 가면의 미소가 나에게 흡수되고 불필요한 것들은 증발되는 건가 싶었다.

"경서쌤, 누가 찾아왔는데요?"

"잘 계셨어요? 전에 아버지 그렇게 보내드리고 나서 인사를 드린다는 게 많이 늦어졌네요. 그동안 잘 계셨죠?" 영우 씨다. 김진수 환자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


  

젊은 날 무엇을 해서라도 가정을 지키겠다는 그였다. 가난했지만 아내가 있었고, 200일 지난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아들이 있었다. 사는 곳에 일자리가 여의치 않아 지방으로 한 달간 일을 다녀온다는 게 3달이 되었다.

"여보, 언제 와요? 나 좀 외롭고 힘드네. 영우도 많이 크고, 이제 당신 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

"조금만 참아. 이번일 끝나면 당신 뜨거운 물 펑펑 나오는 곳에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씻을 수 있게 해 줄게."

"...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우리 옆에 있어주면 안 되는 거야?"

"에이 또 그런다. 이번달에도 못 가는 건 미안한데 조금만 참아줘."

"...."

 그는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끝내 아내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동전이 다되어 전화가 끊겼다. 전화가 없는 단칸방에 편지를 대신하며 불안함을 다스렸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그만큼 아이를 보느냐고 고단해서 그런 거겠지 라며 애써 괜찮은 척 생각을 털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를 너무 믿었던 진수 씨의 오만이었다. 결국 처음의 약속에서 한 참 벗어난 6달이 되어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우야 아빠 왔다. 여보, 나 왔어. 뭐야 불이 왜 다 꺼져있..... 영우야!"

아내는 내가 온다는 날까지만 겨우 참아내며 영우를 돌본 것 같다. 주인집 말에 의하면 아이를 업고 있어도 웃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문을 바라보다 마당을 서성거리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야 느릿느릿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저러다 큰일 나겠네. 영우아빠는 언제 오나 싶을 때쯤, 아내의 오빠라는 사람이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오지 말라 하던 아내는 먹을 것을 들고, 아이의 옷을 들고, 꽃을 들고 오는 사람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고 했다. 오빠라 하기에는 많이 다정해 보이는 게 남편이 멀리 가서 동생 챙겨주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6개월을 영우의 아빠 같은 오빠라는 사람과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나 봐. 영우아빠, 너무 기다리지 마." 라며 집으로 들어갔다.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벽에 기대고 있었던 것인지 해는 저물었고, 저 멀리 달이 떠 있었다.   “엄마!!” 화들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니 영우가 있었다. 오랫동안 울었던 것일까? 영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어색하게 아이를 들쳐 안았다. 낯선 그의 품이 영 불편한지 영우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제야 그는 눈물이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아기였던 영우는 이제 아장아장 걸었고, 그런 영우를 보며 '그래 정신 차려야지. 이제 영우는 내가 돌보아야 한다. 영우와 함께 있다 보면 엄마도 돌아오겠지. 그러다 보면 우린 다시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라며 자신의 마음을 다 잡았다.  두어 달이면 끝날지도 모른다는 기다림의 막연한 기대의 시간은 1년이 지나 10년이 지나고 30년이 되었다.

 영우는 지 아비를 닮은 것은 아닌지, 공부를 잘했고 나라의 후원을 받아 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했다. 3개월이면 아들의 공부가 끝나니까 그때까지 자기가 중병에 걸린 것을 비밀로 하면 될 것이라며 나에게 부탁을 했었다.

"우리 아들 잘 생겼어. 나 닮아 키도 훤칠하고 피부는 저의 엄마 닮아 얼마나 윤이 나는지 꼭 부잣집에서 구김 없이 자란 것 같다니깐. 내가 우리 아들 오면 경서 간호사 소개 해줄게. 경서 간호사 같은 싹싹한 사람이 며느리가 돼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어때?"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진수환자 같은 아빠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가는 생각을 했다. 저런 아빠가 나를 키워줬다면 진짜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의 어두운 과거가 두 부자지간마저 망칠 것 같아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나의 친절에 인사치레 같은 그런 류의 빈말임을 알았지만 실은 몰래 며느리를 꿈꿔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자식이 곁에 없는 김진수 환자를 내 아버지처럼 살뜰히 챙겨드리고 싶었다. 앙상하게 야위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먹고 싶은 음식을 수시로 물었고, 그런 음식을 조금이라도 넘길 수 있게 도와드렸다. 쉬는 날엔 지나가는 길이라며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기도 했고, 말동무해 드린다며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김진수환자의 상태는 점점 음식을 넘기지 못했고, 잠의 수렁에 빠지는 날이 늘어만 갔다. 진통제와 수액으로 3개월을 버텨내기엔 너무 버거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김진수 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어서요. 혹시 언제쯤 한국에 들어오실 수 있을까요?" 고민 끝에 보호자에게 전화로 김진수 환자의 상태를 알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휴무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왠지 받고 싶지 않아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받아야 함을 알기에 곧 핸드폰을 들었다.

 "경서쌤, 김진수 환자분 많이 힘들어 보여요. 얼른 병원으로 와서 인사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정신으로 병원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도착해 보니 아들로 보이는 남자는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듯 보였고, 앙상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와 같은 얼굴로 김진수 환자를 바라보며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김진수환자의 사랑을 받은 자식들이었고, 그렇게 10분 남짓 마지막이 다가오는 듯 차가워지는 김진수환자의 손을 잡고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평온을 빌어주며 그를 보냈다.



 병원에서 만나 장례식장에서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스치듯 지나쳤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 사람이 두 달이 지나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젊은 날 김진수 환자의 말대로 아들과 많이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스쳤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잘 못했네요."

"아닙니다. 아버지 잘 봐주셨다는 주변 말에 바로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장례식 후에 하던 일 마무리하러 잠깐 있던 곳에 다녀왔거든요. 이제야 여유가 생겨 이렇게 왔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오늘 식사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시간은 어느덧 6시를 향하고 있었고, 곁에 있던 동료들은 떠밀듯 조기 퇴근을 시켜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김진수 환자를 추억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이렇게 편할 수가 있다니, 처음이었다. 남자 앞에서 웃을 수 있는 내 모습이 낯설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다. 이것도 미소 가면 때문인가 싶었던 것이다. 뭐 상관없었다. 사실은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나는 나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도망치지 못했는지, 계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음에도 그의 돈때문에 떠나지 못한 나를 스스로 가두었던 형벌. 그 자인한 형벌은 계부의 죽음과 동시에 나를 풀어주었다. 어쩌면 미소상점은 신기루였던 것일까?

 그저 그의 증발과 동시에 사실은 나를 애도하는 듯 잠시 꿈을 꾸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8시쯤, 우리는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엔 좀 더 오래 보기로 약속 하며 헤어졌다.

"지 이이이 잉" 핸드폰 진동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엄마였다. 어제의 나라면 분명 전화를 피했겠지만 지금은 왠지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서야. 어제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니? 집이니? 어때 좀 괜찮아?"

"아 다시 전화를 한다는 게 잠이 들어 그랬어요. 괜찮아요. 이제 막 씻고 나왔어요. 엄마는 어때요?"

"응? 아... 응 엄마도 괜찮아."

 단답형의 일방적인 통화만 해오던 모녀지간이었는데, 웬일로 걱정하는 말을 하는 딸이 낯설었는지 엄마는 당황했다. 하긴, 내가 불행한 10대를 보낸 것에 엄마에 대한 책임 또한 적지 않았다는 원망에 더욱 차갑게 대하긴 했었지. 하지만 엄마마저 없다면 이 커다란 세상에 나 혼자 남는다는 두려움으로 감히 연을 끊을 생각은 못하고 가늘게나마 최소한의 도리로 엄마와 딸로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딸이 오늘은 저를 걱정하는 말을 하다니 엄마가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엄마, 우리 이제 그때 그 시절 그 사람 잊고 살아요. 이건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앞으로는 우리 그동안 못했던 남들이 하는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어쩌면 지신의 딸이 언제라도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딸을 지키기 위에 곁에서 함께 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딸 곁에 다가갈 엄두도 못했다. 그저 딸 주변에서 딸을 몰래 지켜볼 뿐, 늘 불안한 생활을 하던 엄마였다. 그런 아픈 손가락인 딸의 말에 10년의 회한을 담아 통곡을 했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12년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멈췄던 12년의 시간이 다시 흐르는 순간이었다.


10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부족했던 밀린 잠이 한번에 오는 것인지 곧 깊은 잠에 빠져들것 같다. 잠이 드는 찰나 왠지 내일 부터 진짜 행복이 찾아 올것 같은 생각에 미소를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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