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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Jan 18. 2024

모래성 #2-1

네가 없는 우리는

 여름이 지나 빨갛고 노란 단풍이 들 때쯤, 뜨거운 바람은 이내 시원해진다. 그런 공기의 온도가 느껴질 때 나는 너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주희, 너의 날을 말이다.  똑같은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있건만 딱 그날이 되면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천천히 모든 장면들이 클로즈업되어 천천히 고요하게 지나간다. 어쩌면 그 시간이 매년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 같은 속도일지도 모르겠다. 쓸쓸하지만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일 년중 그날, 그 시간이다.


 나에겐 그런 날이지만 나의 부모에게는 그때가 되면 위태해 보였던 얼굴에서 생기가 돈다. 어쩌면 1년 중 지금은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강한 주문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날, 많이 마른 엄마는 어디서 힘이 나는 건지 먼지 쌓였던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방마다 있는 커튼을 걷어 깨끗하게 빨래를 하고, 마무리로 주름을 잡아 다림질까지 해서 다시 걸어놓는다. 특히, 주희의 방은 더욱 광이 나게 청소를 하는 듯하다.  한날은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적당히 하시길 권유했다.


“오랜만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끗하면 좋잖아.”


그 이후론 그냥 그런 엄마가 힘들지 않게 조금 도울뿐이다. 나의 할 일 중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 주희가 좋아하던 카스라이트 맥주(그 녀석은 살이 찐다며 꼭 카스라이트를 사 오라 했었다)와 안주거리들을 냉장고에 가득 채운다.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알지만 꼭꼭 채워둔다. 우리는 그러니까 주희가 없는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그 아이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듯 되새기고 즐거워하다 해가 지면 깊은 심연의 슬픔이 온 집안을 삼킨 듯 어두운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는다. 원래 ‘그날’은 그 아이의 날인 것처럼, 원래 내 생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3년 전


“오빠 나 지금 올라가고 있어. 혼자 쓸쓸하게 야동이나 보고 그런 건 아니지? 내가 그럴까 봐 아주 힘들지만 꾸역꾸역 당신 혼자 있을 그 집으로 갑니다. "


“참나, 내가 어린애냐! 그래서 엄마아빠도 여행 보내 드린 건데, 뭘 새삼스럽게 온다고 호들갑이야. 지방으로 출장 간 것도 힘든데 그냥 자고 오라니까! “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래? 그래도 생일인데 혼자 있음 안 되지. 내가 대리님께 부탁해서  안 자고 오늘 출발하기로 했어. 나 잘했지? 자지 말고 딱 기다려.! 우리끼리 케이크에 맥주는 해야지! “


"아 뭐래. 나 혼자 맞는 생일 기념하려고 했거든. 혼자만의 시간 방해하지 말고 그냥 엄마 아빠처럼 내일 오라고!!"


 “누구 좋으라고!! 이미 출발했거든 ㅎㅎ 대리님도 내일 일찍 약속 있다고 오늘 올라가자 하셨다 뭐.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카스라이트 사놔!! 알지? 그럼, 2시간 뒤에 봐.”


 사실, 여자 친구도 가족도 없이 처음 맞는 생일이라 올해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던 차였다. 안 그래도 친구들은 기분 좋게 축하주 한잔 나누자며 연락이 왔지만 왠지 모르게 올해부터는 술에 취해 생일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는 싫었다. 매년 시끌벅적하게 보냈으니 올해 한 번 정도는 혼자 조용히 집에서 영화를 보며 감상에 젖어 보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이런 내가 굳이 불쌍하다며 동생 주희가 함께 선심 쓰듯 있어준다며 출장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며 연락이 온 것이다. 좀 비글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나를 제일 생각해 주고, 어쩌면 제일 잘 아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말은 괜찮다 하지만 녀석이 온다니까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다. 동생이 좋아하는 최애 맥주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며 볼품없는 안주거리라며 볼멘소리로 늘어놓을 투정들을 상상하니 소리 내어 혼자 웃어본다. 시계를 보니 이제 1시간 뒤면 주희가 도착할 것 같다. 아껴둔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이면 비글 같은 녀석이 도착하기에 충분할 시간인 것 같다.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떠보니 벌써 12시가 막 넘었다. 주희가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내가 잠들어 그냥 방으로 들어간 건가? 생각이 들 때쯤 끊겼던 벨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다시 울린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거기 이주희 씨 댁이죠? 여기 여주 경찰서입니다. 오늘 여주 나들목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

“네?”

 꿈인 줄 알았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다 잠들어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다 별안간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차키를 집어 올렸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혹시나 일처리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그래, 신분증을 잃어버렸다면 그래서 그것을  주은 사람이 사고가 난 거겠지 등등의 온갖 것의 생각들을 하며 낯선 곳의 경찰서로 향했다.


“아까 전화받은 이주희 씨 가족입니다만..”

“아.. 네.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오빠입니다만..”

“이쪽으로 오시죠.”

어두운 복도 살아있을 주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터널 앞에서 접촉 사고가 나서  나오자마자 서행을 하던 중에 뒤 따라오던 트럭이 앞의 상황을 확인 못하고 시속 130킬로로 빠르게 오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이주희 씨 일행이 타고 있던 차를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차가 거의 반파되었고, 조수석에 있으셨던 이주희 씨는 그 자리에서 곧 사망하셨습니다. “


‘이 사람 지금 뭐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정도것 해야지. 계속 이상한 소리로 지껄이네.‘


입주변을 맴돌분 생각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사망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 건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아니 주희가 맞긴 한 걸까? 흰 천으로 덮여있는 저 밑에 누워있는 사람이 그러니까 주희라는 얘기인데, 나보고 불과 2시간 전까지 통화하던 그 아이가 저기에 있다는 건데 지금 나보고 확인하라는 건데 이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아무런 대꾸도 없이 흰 천 위에서 덜덜 떨리는 손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정말로 여기 누워있는 사람이 주희 일까 봐 두려웠다. 정말 주희라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쉽사리 손을 올리지 못했다. 이런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경찰관은 한마디 한다.


“혹시 부모님은 같이 안 오셨을 까요?”

부모님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급히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었다. 가기 싫다는 여행을 보내드린 건 나와 주희였다. 아들생일이라고 그래도 함께 식사라도 해야 된다는 엄마였다. 매일 먹는 식사고 매년 돌아오는 생일인데 한 번쯤은 여행을 가시라며 이제 자식들 생일엔 한 번씩 여행을 보내 드릴 것이라고 그러니 다 큰 아들 걱정일랑 하지 말고 다녀오시라고 남매가 조르듯이 말씀드리며 보내드린 부모님의 첫 여행이었다.


“... 오시는 중입니다. 정말.... 우리 주희가 맞는 거죠? 만약 우리 주희가 아니라면,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보여주시죠.”

 아니기만 해 봐라 경찰이라는 조직을 내가 고소할 테니....!



… 주희가 너무 아파 보이는 주희가 누워있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 고스란히 얼굴에 서려있었다. 종이에 베이기만 해도 하루 종일 칭얼칭얼 데던 녀석이, 사랑니 빼기 전날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졸린 나를 억지로 흔들어 깨우며 본인을 위로해 주라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저 혼자서 낯선 곳에서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푹 꺼져버린 이마를 매만지며 엉켜 붙은 머리를 떼어냈다. 거추장스러운 거 싫어서 앞머리도 내지 않던 아이인데 피 떡에 엉겨 붙은 머리가 얼마나 불편할까 싶었다.

‘혹시 이거 꿈인가? 아님 내 생일에 이 녀석이 놀린다고 이러는 건가? 갑자기 일어나서 서프라이즈라며 놀리는 거 아냐?’

 순간 부화가 치밀어 올라 신경질적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야 이주희 뭐 하냐. 내 생일이라고 맥주 사놓고 기다리라면서 2시간이면 된다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일어나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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