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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Jan 25. 2024

모래성  #2-2


-현재-


“저 면접..다녀올게요.”

“…..”

어머니는 주인 없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아 주희가 분주했을 화장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얼핏 미소가 서려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주희가 늦었다며 왜 깨우지 않았냐며 투덜거리면서 출근 준비를 하던 모습을 떠올린 듯하다. 아직도 선명한 그날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을 어머니의 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오늘도 뒷모습을 보며 혼자 인사했다. 현관 앞 아버지의 방문을 열어본다. 아버지는 언제 나가셨는지, 아니 들어오지 않으셨는지 온기 없는 방이 어둡다. 유독 부녀지간 사이가 돈독해 장난스런 엄마의 질투를 받던 아버지는 주희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주희가 가고 2달 내내 매일 술에 잠겨 들어왔다.

 

“주희야 아빠왔다. 아빠가 주희 좋아하는 맥주 사왔는데 우리 오붓하게 한잔할까?”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있을 리 없는 주인의 방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불이 꺼진 방을 확인 한 아버지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 같은 말들을 읊조렸다.

“이 녀석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안 들어온거야? 주원아 너는 오빠라는 놈이 동생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잠이 오냐? 얼른 전화해봐. 이 녀석 들어오기만 해봐라. 아주 볼에 턱수염을 비벼 줄 테다. 회사 다니면 어른이 다 된 줄 아나? 이 녀석이 아주 밤 무서운 줄 몰라요. 오면 잔소리 폭격이다 오늘 잠 다 잤다. 이주희.”

 졸업논문을 쓰다 말고 방안에서 고민했다. 아버지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희에게 전화하는 시늉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조용히 아버지의 술주정이 잠으로 끝나길 기다리며 내 방에서 숨죽이고 있어야할지. 결국 기다리는 것을 선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쪽이 조용해졌다.

“후우.”

나도 모르게 숨을 몰아쉬고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아버지가 잠이 들었나 싶은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춥지 않지만 그래도 한기를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홑 이불이라도 덮어주려고 방문을 열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 너른 거실에ㅜ가까워 질 때쯤 당연히 누워계실거라 생각한 아버지는 앉아서 고개를 숙인채 조금씩 많이 작아진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아버지가 계신 쪽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신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흐느끼며 울고 계셨다. 소파에 기대어 낮게 말하며 조용히 울고 계셨던 것이다.


 “주희 이 녀석아. 나의 공주야. 늦게라도 좋으니까 들어와. 이놈아. 아빠가 우리 주희가 해주라는 거 다 해줄 테니까 늦게라도 좋으니까 제발. 제발 집으로 좀 들어와라 주희야...아빠가 주희 대신에 갔어야 했는데...”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나도 그저 각자의 공간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같이 슬펐지만, 함께 슬퍼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웃을 수도 없고 웃어서도 안되고, 행복하면 더욱 안될 것 같은 시간이었다.

 넷이 함께 일 때 끊이지 않던 대화는 셋이 되고 나서 거의 사라졌고, 행복의 기운 보다는 슬픔의 기운이 짙게 깔린 집이 되었다.


 주희가 떠난지 50일이 흘렀다. 아버지는 다행이도 더이상 술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주희를 꿈에서라도 만난건지 모르겠다. 어느날 아침 나의 방에 들어온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주희가 더 이상 우리 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을 원하지 않을 거 같다. 너도 이제는 다시 가던 길 가야지. 엄마도 아빠도 노력해 볼게. 주원아."

 그러나 그 결심은 아버지만의 것이었다. 어머니의 시간은 아직 그 때에 머물러 있었는데 아버지만 저 혼자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주희가 좋아하지 않는다며 정신 챙기라면서 무너져 있는 어머니를 잠자코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엄마를 보며 서투른 솜씨로 음식을 차리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하셨다. 그 마저도 몇 숟가락 뜨지 않는 엄마를 보며 처음에는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는 주희 방에 멍하니 있던 어머니께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이 그런다고 주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제발 기운 차려 일어나라고 !”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 떠오른 별들 중에 주희를 찾는다는 듯이 창문 넘어 어두운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체념한듯 고개를 푹 숙이셨다.

 우리 가족의 슬픔의 깊이는 너무 깊어 허우적 거릴 수록 더 깊게 빨려들어갔다. 발버둥을 쳐보며 위로 오르지만 그런 노력에도 금방 다시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극복하기 힘든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만 기운을 차린다면 해외지사에서 우리 세가족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은 주희를 안고 있었고, 주희만 두고 갈 수 없다 하셨다. 결국 그런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는 승진 보다는 지방지점과 그 옆에 사택을 선택하며 홀로 망명하듯 떠나셨다.

“엄마 잘 부탁한다. 주말마다 보러 올게.”

“네. 아버지도 건강 조심하세요.”


 주말마다 온다는 아버지는 집에는 들어오시지 않고 점심 한 끼 정도 밖에서 함께하고 밀린 업무가 있다며 야간 고속버스를 타고 본인의 숙소로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 건지 어머니는 주말만 되면 없던 힘을 짜내듯 집안을 청소하고 저녁을 위해 장을 봐오셨다. 아버지가 들르지 않는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다보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던 듯도 싶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끝내 집에 들르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다시 멍하니 소파에 앉아계셨다.

 그런 부모님 사이에서 나는 중심을 잡아야했다. 부모님처럼 심연으로 가라앉기 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해야했다. 주희가 떠났을 때 이제 졸업반이었으므로 취업을 위해서도 정신차려야했다. 그래야 어머니를 아버지를 잘 챙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라도 이 슬픔을 잠시 묻어 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1년, 2년을 잘 버텨왔고, 직장인이 되었다. 생각보다 분주한 회사생활은 주희를 잊게도 했고, 주희를 생각나게도 했다.


 ‘주희 너도 회사생활을 이렇게 시작했겠구나.’,‘이래서 너가 밤마다 맥주를 사오라고 했구나.’

 ‘꼰대 꼰대 하더니 이런 상사를 만났겠구나.’,‘거래처에 가면 이렇게 대기하고 있었겠구나.’

등등의 생각들은 여전히 내가 그 아이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근데, 이런 내 삶의 균형이 매년 주희의 기일이 다가오면 슬픔이라는 파도가 거침없이 덮쳐온다. 그 슬픔은 내가 어렵게 쌓은 모래성을 허무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그 날이 내 생일이 아니었다면 그 때, 내가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갔다면, 아니, 내 생일에 부모님을 여행을 보내드리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주희는 무리해서 집에 오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그래 마지막 그 때 그 아이가 조수석에 타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주희는 우리 곁에 계속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후회스런 생각은 또 다른 후회를 불러냈다. 어차피 되돌 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간신히 잡은 마음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자책하고 아파하다보면 어김없이 다음날의 해가 떠올랐다. 또 다시 아무날도 아닌 날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럼, 그 때부터 나는 새로운 모래성을 다시 쌓기 시작하면 되었다. 늘 그래 왔듯이 멀쩡하게 집을 나서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사연은 묻어두고 최대한 웃으면서 지내면 되니까 내 생일 하루 정도 그 정도의 슬픔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불과 주희를 닮은 이름도 같은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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