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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Feb 08. 2024

모래성 #2-3

선을 긋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사한 인턴 김주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획안 수정을 시작하려던 참에 이름이 귀에 꽂햤다. 매년 들어오는 인턴들의 자기소개에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고,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눈인사만 간단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름이 들린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매우 흔한 이름이었지만 주희를 떠나보낸 후로 비슷한 이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희라는 이름에 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사무실 가운데 주희를 닮은 듯한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이대리 자네가 마케팅 전문이니까 이번 인턴 교육은 이대리가 잘 알려줘요.”

 “저, 팀장님 저는 아직 인턴을 맡을 만한 여력이…“

 “에이 이번에는 맡아줘. 이제는 안 된다고, 기획안도 거의 마무리되었잖아. 알았지? 그럼 나는 거래처에 다녀올게요.”

 차라리 다른 인턴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동생과 이름이 똑같은 게다가 생긴 것도 왠지 비슷해 보여 더 거부감이 든다. 어쩔 수 없이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에 살짝 짜증도 나고 가슴이 점점 갑갑해졌다. 아니, 어쩌면 닮았다기보다 똑같은 이름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대리가 되고 나서 매년 들어오는 인턴을 교육하며 불편한 것보다는 혼자 바쁜 게 더 나았다. 그래서 인턴을 맞지 않는 대신 일을 더 많이 하겠다 자처한 것인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안 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이번 인턴 교육은 내가 맡아야 할 것 같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 네, 이쪽으로 오시죠. 마케팅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오신 거죠?”

 “네. 대리님 혹시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숙지해서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 네."

 그녀의 눈은 반달눈이 되고 입 꼬리는 눈 쪽으로 올라가며 콧잔등에는 주름이 잡히는 모습으로 나를 수줍은 듯 그렇지만 열의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야 이주희, 너 그렇게 웃으니까 주름 엄청 잡혀.”

“나도 안 그러려고 하는데 계속 그렇게 되네. 나이 들기도 전에 여기에 주름 엄청 잡힐 것 같아.”

“야 어색하게 웃지말고 그냥 웃어. 그게 제일 나아.”


콧잔등에 주름지고 눈가에 주름지는 것을 고민하면서도 가장 밝게 웃을 때 나오는 꾸밈없는 주희의 모습이 별안간 떠올라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의 모습이 오늘 처음 만난 여자의 얼굴에서 왜 보이는 건지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일었다. 순간 당황해 나도 모르게 동공이 흔들리고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미팅 준비 자료입니다. 각 20장씩 복사해서 11시까지 철해서 준비해 주세요.”

 “아, 네 대리님.”

 나의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하게 빠른 걸음으로 회사 옥상으로 갔다. 부모님을 살펴야 하는 중압감과 해내야 하는 업무들이 많아 나를 지치게 할 때 마치 물속에 있는 듯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야. 오빠 김주원. 뭘 그렇게 생각해. 걱정한다고 해서 나아질 거였으면 벌써 다 해결됐겠다. 그만 생각하고 맥주나 마셔."



 늘 생각이 많은 나를 별일 아닌 듯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는 역할은 항상 주희였다. 그런 주희가 없어지고 나서는 나는 저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중심을 잡고 다시 일어서야 하기에 답답할 때마다 주희가 있을 하늘과 제일 가까운 회사 옥상을 찾았었다. 부모님도 동료들도 없는 나만의 공간인 옥상으로 말이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몰아친다.

 “후...”

 오랫동안 물속에 있다 떠오른 고래처럼 꽉 막힌 숨을 몰아쉬었다. 날 숨 한 번으로는 쉽게 시원해지지 않아 몇 번의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엉켜버린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거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지.'

 내가 왜 처음 보는 여자를 보며 왜 흔들리는 것인지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럴 때 담배라도 물면 속이 편할까 싶지만 부모님을 위해 그마저도 끊어버렸다. 급하게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도 자일리톨 사탕이 있었다. 급하게 껍데기를 까 입에 톡 넣는다.

 “와그작.”

 두어 번 녹여먹다가 급하게 콱 씹어버렸다. 며칠 전 갔던 치과에서 사탕이나 얼음 같은 것 깨 먹지 말라고 했는데, 모르겠다. 이 마저도 안 하면 답답함에 언젠가 뻥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오늘이 그런 날들 중 하루다. 모르는 여자에게 흔들리는 내 모습도 답답하고, 앞으로 그 여자와 1년을 어떻게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할지 더 답답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햇볕은 따스하다. 마치 별일 아니라고 지금의 이런 상황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냥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것인지 워치 진동에 내려다보니 회의 15분 전 알람이 울린다. 마른눈을 손으로 비비고 나서 다짐한다. 그녀와 주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이름만 같은 여자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부분이 놀라운 것일 뿐이다. 주문을 외듯 나를 타이른다.


 “대리님 회의 자료는 철해서 대리님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내가 나타나기만 기다린 듯 한 그녀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아, 네. 확인해 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회의 들어갈 테니 김주희 인턴은 시간 되면 동기들과 점심하고 오세요. 저는 회의 끝나고 또 검토해야 할 게 있어서요. 앞으로도 점심시간은 개인시간으로 활용하시면 됩니다. 저는 원래 점심 혼자 먹는 게 편해서 괜찮아요.”

 “... 아 네.”

 그래 어색하게 나와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는 동기들과의 뒷 이야기가 첫날에 필요한 그것일 수도 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위한 나의 배려이다. 뭐 나를 위한 말이었다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내 생각은 그랬다. 잔잔한 호수에 누군가 던진 돌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시 잔잔해지려 마음을 가다듬고 외면하려 하지만 이 파장은 웬일인지 멈추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회의시간 내내 집중을 못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팀의 프레젠테이션 발표가 끝났다. 다행히도 내가  발표자는 아니었기에 괜찮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발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쩌면 느린 승진을 할지라도 차라리 이게 낫다. 대학 때만 해도 발표자가 PPT의 꽃이라 생각하며 저돌적인 카리스마로 발표하는 것이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 공부하고 연습하기도 했다. 완벽한 발표를 위해 PPT 참여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이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최대한 열심히라는 목표를 잃은 채로 겉으로만 차분히 제자리로 돌아간 척 회사를 다닐 뿐이었다. 나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목표 없이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뭐라도 돼있겠지 싶다.

 “이대리 오늘 자료 좋았어. 덕분에 발표하는 내내 아주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더라. 내가 이번에 잘 되면 밥 한 번 살게”

 올해 승진을 앞둔 조 과장의 말이었다. 밥을 살지 안 살지 모르겠지만 나라고 얻어먹을 생각은 없다.

 “과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점심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적막이 좋다. 커피에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옥상에 가서 먹을까 하다 그냥 사무실에 있기로 하고 막 들어섰을 때였다. 그녀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 아직 식사하러 안 갔어요?”

 “아 대리님 네, 이제 가려고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출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내 자리에 샌드위치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왠지 식사 못하실 것 같아 놓고 갑니다. -인턴 김주희- ”

나를 신경 쓰지 않도록 한 행동이 그녀가 더욱 나를 신경 쓰게 한 일이라 생각하니 난감했다. 커피는 그렇다 치지만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옥상으로 향했다.


"대리님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주희 씨 덕분에 점심 잘 해결했습니다. 근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배려해 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이 자료 총무과에 가져다주시겠어요? 30분 뒤에 거래처 갈 거니까 준비하고 계시면 됩니다.”

 나의 인사에서 미소와 절망이 순서대로 설핏 스쳐 지나갔다. 어쩔 수 없다. 사수의 정중한 거절이 민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내가 나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선을 명확하게 그어냈다. 그래야 나도 계속 마주 칠 이 사람과 편하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 더욱더 진하게 선을 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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