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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Mar 07. 2024

모래성 #2-4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애처로운 모습으로 빌딩들 사이에 위태롭게 뜬 초승달이 마치 나의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럽다. 온통 검은색인 하늘 위에 저렇게 작은 크기로 빛을 계속 내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출구 없는 긴 터널의 암흑 같은 슬픔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지내고 있어 보이는 아들의 역할과 강박으로 둘러싸여 완벽한 듯 꾸며낸 나의 회사 생활이 인턴사원의 등장으로 인해 맥없이 휘청거렸다. 가짜로 위장한 나의 담벼락이 이렇게 약했다니, 처연해 보이는 저 달이 초라한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아 입안이 곧 씁쓸해졌다. 그러고 보니 점심에 아메리카노 이후로 10시가 되도록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인턴사원이 놓고 간 샌드위치는 포장도 채 뜯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방에 하루종일 있었다. 버리지도 그렇다고 먹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로 나와 함께 하루종일 있다 내 퇴근길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샌드위치가 가방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바로 허기가 진다.


 얼마나 저 달을 보고 있었는지 목이 뻗뻗하다 싶을 때쯤 뒷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을 수 있었다. 흡사 주술에 걸렸다 풀려난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몸이 휘청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루종일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다가오지도 않는 타인에게 저 혼자 방어한 탓에 안 그래도 바닥이던 에너지가 소진되어 그런 것 같았다.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 깎아질 듯 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루틴 아닌 루틴인 듯 밝은 척 웃으며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불 꺼진 방에 얼른 드러누워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 나을 것 몸이 좀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에 속도를 높여본다. 그러다 별안간 오늘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사려 깊은 아들이 아니라 그저 나로서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인지 다시 오지 않을 주희를 기다리는 것인지 모를 어머니 곁의 착한 아들 역할은 오늘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더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몇 해전만 해도 2-3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곳이었는데 오래간만에 온 이 골목은 몹시도 낯설다.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헷갈릴 정도의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거리를 밝히고 거리를 꽉 채운 사람들은 대부분 즐거웠고 웃음이 넘쳐났었다. 인생의 청춘이라는 꽃을 틔운 나와 비슷한 나이대들의 사람들은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때의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며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이 골목으로 자연스레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의 꿈같은 예상과는 다르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젊음의 거리를 이루게 해 주었던 상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 아닌 이주를 하게 되었고,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 그 세입자들은 이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그전보다 높은 술값을 요구했고, 결국 이 거리를 찾아들었던 20대 청춘들은 다른 곳으로 점점 흩어지게 되었다. 나 역시 그즈음 이 거리에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니 이 어줍고 을씨년스러운 거리가 더욱 낯설 수밖에.


 그때의 나처럼 시끄러운 술집을 찾기보다는 잔잔한 음악에 혼자 술 마실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과거 이 골목에선 흔하지 않은 콘셉트라 못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되면 맥주 몇 캔을 사서 공원이라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막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오른쪽 사이골목에서 주광색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는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인 듯 그쪽으로 걸어가게 되었다. 몇 걸음 걷다 이내 빛이 나는 상점 앞에 도착했다. 큰 간판은 없고 오가는 사람만이 눈을 들었을 때 볼 수 있을 법한 곳에 작은 간판이 눈에 띄지 않은 색으로 간판이 튀어나와 있었다.


<미소상점>


 아, 왠지 내가 찾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냥 갈까 싶은 순간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도 모르게 가게 안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당신의 가면을 만들어드립니다. 미소상점으로 들어오세요."

 '가면? 이  근처에 클럽이 있긴 했지.'

 푸근한 인상에 안경을 쓴 외모에 헌팅캡을 쓰고 있는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영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하긴 저런 인상의 얼굴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도 몇 번은 본 것 같은 그런 인상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게를 잘 못 찾은 것 같아요. 혼자 조용히 술 마시려고 했는데 잘 못 들어섰네요."

 "ㅎㅎ 아닙니다. 손님뿐 아니라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들께서는 잘 못 왔다고 하시는데 제대로 오신 게 맞습니다."

 "... 네? 미소... 상점...?"

 "이쪽으로 오시면 혼자 조용히 술 마시는 공간이 입답니다."

 이 건 뭐지? 신종 인신매매인 건가? 엉거주춤하는 나를 남자는 안쪽으로 안내했다. 뭐 내가 저 사람보다 키도 머리하나는 더 큰데 무슨 큰일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성격상 분명 이 가게를 나가면 그대로 집으로 갈게 분명했다. 잠시 드는 생각이었지만 오늘은 모험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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