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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Apr 11. 2024

모래성 #2-6

 한 번 터진 울음은 쉽사리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좋아하던 사탕을 누군가에게 강제로 빼앗긴 것처럼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다.  주희가 떠난 후로 동생의 부재속에서 나는 그저 반듯하고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좋은 아들로만 살아야했다. 부모님의 슬픔 가운데서 어디도 정박하지 못하고 떠도는 작은 배가 딱 내 모습일 것이다. 내가 탄 나룻배는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으면 금새 침몰 할 수 있었기에 앞만보고 힘껏 나아갔다. 근데 오늘은 알 수 없는 마음들이 한데 뒤섞여 불안하게 배가 좌우로 휘청이고 있다. 하지만 그 불안함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억누르고 싶지 않다.

지금 내 목으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결코 멈출 수도 멈추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원래의 무게의 몇 배는 될 법한 눈꺼풀이 느껴졌을 즘 다시 주변을 살필 수가 있었다.

 '아 이 곳이었지. 나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이 텅 빈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시려 했었지.‘

 이곳이 처음 오는 낯선 곳이라 한참을 편하게 울 수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만 있고, 아는 사람 마주칠 걱정이 없는 바로 이곳이라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남자는 내 주변에 있는 듯 없는 상태다.


"사장님, 저 이제 그만 가보려고 합니다."

부엌 쪽에서 아무것도 보고 듣지 않았다는 미소로 사장은 나를 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어묵탕은 좀 드실만했나요? 좀 더 드시고 가시지 그러세요."

"아닙니다. 시렸던 가슴이 따뜻해졌고, 사장님의 공간 덕분에 후련해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은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내 얼굴을 그저 지긋이 몇 초간을 바라보다 결심이 선 듯 말을 꺼냈다.

"저희 가게가 미소 상점인 건 알고 계시죠? 시간이 되시면 잠시 체험만 해보고 가시죠. 지금 상태로 집에 가시면 같이 사시는 가족들이 많이 놀라실 것 같아요. 부기가 가라앉을 정도의 잠깐의 시간동안 좀 들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착용해 보셔도 좋습니다.“


 울었다는 민망한 생각에 그저 얼른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슬픔속에 침잠해 있는 어머니를 더 짓누르지 않기 위해 꽁꽁 숨겨놨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처음 이곳을 들어서던 나였다면 극구 사양하며 도망치듯 이 상점을 빠져나왔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았다.


"제 몰골이 말이 아니죠 ㅎㅎ 안 그래도 미소상점에 대해 조금 궁금하던 차인데 잠시 더 있어볼까요?"

 사장은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거울을 보여준다. 안 봐도 알 수 있는 내 몰골을 눈으로 확인하니 귀까지 화끈거렸다. 얼핏 스치는 사장의 짓궂은 미소는 나의 착각인 것 같지만은 않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나노 입자로 만든 시트를 얼굴에 입혀 생물학적 응용을 통해 체내에 흡수가 되는 원리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입니다. 이 마스크의 효과는  자신이 제일 힘들어하던 일을 강력하게 숨기고 흡수된 나노입자는 뇌에서 우울한 영역을 찾아 크기를 작게 만들어 긍정의 효과를 하는 턴 업 작업을 12시간 동안 지속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건강한 미소를 유지하면서 체내로는 우울을 이겨내는 건강한 뇌로 다시 되돌려 놓는 두 가지 역할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서재의 책들이 설명이 되는 사장의 말에 인신매매나 생각한 내가 어이가 없었다. 가만, 나노입자시트라 하면 몇 년 전 회사에서 상용화를 앞두고 비밀리에 마케팅 부서로 내려온 프로젝트였는데, 상용화되면 모든 프로젝트를 공개하겠다던 개발 연구원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백지화되면서 엄청난 손해를 입었던 그 상품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사장님, 혹시 제가 어느 회사를 다니고 계신지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제게 이런 말을 하셔도 되는 걸까요?"

 "저는 손님의 우울만 볼뿐 그 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그 수석 연구원이라면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배지를 달고 있는 나를 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했다. 물먹은 오너일가와 이 연구를 등에 업고 사장으로 승승장구할 날만 꿈꾸던 신이사가 이 연구원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아니 적어도  나노입자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회사 사람에게 하지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사람은 겁도 없이 나에게 자신의 마스크를 얘기하고 있다.

 

 "이 가게는 아무에게나 보이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숨을 내뱉을 때 나오는 죽은 세포들의 찌꺼기가 다 다른데 그중에 우울함을 담당하는 죽은 세포들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우울함에 잠식당한 사람일수록 건강한 사람에 비해 우울의 농도는 아무래도 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이 앞을 거닐 때 우울이 가득한 죽은 세포를 날 숨에 내뱉는 사람들 세포가 제 각각 축적이 되고 때 어느 정도의 기준이 되는 농도가 채워지면 이 가게의 간판이 반짝이며 별안간 불이켜집니다. 아마도 회사에서 저를 찾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손님의 회사가 어디가 되었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손님의 우울 세포 농도 만이 이 가게로 손님으로 초대하게 된 것일 뿐입니다."


 다소 심각한 얘기를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고, 예의 미소로 평온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나는 그 말이 정말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로 대답하기보다는 짧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 말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손님, 그럼 그 마스크 얘기를 계속해 볼까요? 마스크의 종류는 대략적으로 앞에 나와있는 태블릿 p.c를 보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중간에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① 온화한 미소 - 상대를 배려하고 싶을 쓰는 가면★

② 여유로운 미소 – 화가 나지만 현명해 보이는  가면★★

③ 친절한 미소 - 고객을 대상으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친절을 주는 가면 ★★

④ 행복한 미소 - 과거로 인해 행복하지 않지만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쓰는 가면 ★★★

⑤ 용기 있는 미소 - 관계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피하지 않으며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가면 ★★★★

 여기서 고르시면 됩니다. 가면을 고르는 순간 12시간 효과를 볼 수 있고, 8시간 후부터 내 피부에 조금씩 흡수되고 안 좋은 감정들과 근심들은 가면과 함께 외부로 증발되면서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뒤에 보이는 별표는 가격을 의미하게 되는데, 오늘은 제가 손님께 체험을 권유드렸으니 무료로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온화한 미소가 필요했다. 애써 슬픔을 우울을 삼키는 미소가 아니라 진정으로 괜찮아 보이는 미소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근데, 더 이상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을 고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미소를 말이다.  

<용기 있는 미소>  그렇다. 나에게는 이 마스크가 제일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주희를 기다리며서 어쩌면 조금은 나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오늘만은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용기있는 미소>로 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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