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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Apr 18. 2024

모래성 #2-7

 용기라는 말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단어를 내가 쓰게 될 줄 몰랐던 터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근데 나에게 필요한 단어가 용기였던 것 같다. 주희를 잊는다기 보다는 보낼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겐 필요했다. 보낸다는 것이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닌데, 내가 그러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나의 생일에 가버린 주희는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각인되기 위해서 그날을 정해 가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억지로 지워준 것이 아닌데, 나는 나 스스로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있었다. 부모님께 건강하게 주희를 보내자고 말했어야 할 나는 그러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뒤에서 모른 척 지켜만 보고 모른 척 내 슬픔을 억누르기만 했다. 부모님의 아픔조차 등 쓸어주지 못한 것 역시 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보셨던 거울을 잠시 바라보시겠습니까? 얼굴크기 눈 사이 거리, 입 크기 스캔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앉아서 잠시 눈을 감아주시면 됩니다.”


 남자의 말대로 눈을 감으며, 몇 년 전 내 책상 위에 던져졌던 파일 속 자료들이 생각이 났다. 얼굴을 스캔하면 나노입자로 만들어진 금색 실로 마스크를 만든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실리콘 마스크를 착용함 듯 하지만 나노입자는 피부의 숨구멍으로 12시간 흡수되는 작용을 통해 우울을 담당하는 뇌관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소문에 의하면 한 연구원의 가족이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이 마스크연구를 했다는…


 “ 자 이제 눈을 뜨시고 이 쪽으로 오시겠습니까? 미소 가면이 만들어지는 동안 여기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


 어느새, 남자는 저만치 서서 흰 천을 걷어내며 말을 했다. 들어오면서 봤던 흰 러그 위 소파 앞이다. 오크색의 가죽으로 된 커다란 소파였다. 가죽 냄새보다는 우디 한 향이 풍기는 듯했다. 남자는 서재 뒤편으로 사라졌고, 그제야 아까 하고 싶었던 흰 러그 위로 신발을 벗고 올라선다. 역시나 푹신한 털의 감촉이 발전체를 감싸는 게 몽글한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음과 동시에 내 몸은 빈백 소파에 걸터앉은 것처럼 소파 깊숙한 곳으로 푹 빠져들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노곤해지는 게 곧 잠이 들 것 같은데.. 미소 가면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주말 아침인지 날이 밝았음에도 나는 아직 침대 위에 누워있고, 바깥에서는 엄마의 음식냄새가 풍겨온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는 아버지가 집에 오신 것 같다. 음식 하는 엄마와 식사하는 아빠라니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을 붙여 말했을 때 보다 더 가까웠던 그때의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궁금해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연다.


 "일어났니? 어서 앉아. 어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

 "아무리 그래도 일요일 아침엔 다 같이 식사하기로 했잖아.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너의 생일상을 차리고 있는데, 눈치껏 일어나야지. 첫 째고 둘 째고 아주 엄마의 고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아유, 됐어요!! 뭘 또 그렇게까지 말을 해. 나 화 안 났거든요."

 "그래? 내가 혼구녕을 내주려고 그랬지."


 뒤돌아서는 엄마를 확인학고 윙크를 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아침부터 누가 오나 싶은 생각이 들어 현관 쪽으로 나갔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꽃다발을 든 여자가 들어선다.


 "야, 김주원 아니 오빠, 생일 축하한다."


 주희가 서 있었다. 예전 밝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주희가 서 있었다.


 "내년부터는 생일에 집에 있어서 가족들 축하받을 생각 말고, 제발 좀 데이트 좀 하지 그래. 이제 가족이 아니라 오빠 너만 생각하라고.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도 이제 오빠가 꼭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이제 우리 걱정일랑 그만하고 잘 지내라고. 알았지? 이제, 나 다시는 오빠 찾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오빠 이제부터는 꼭 행복해야 해."


 눈가가 축축해져 혹시나 들킬까 싶은 생각에 눈가를 급하게 닦아내며 정신을 차려본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바지춤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아버지였다.


 "주원아, 바쁘니?"

 "아니요. 괜찮아요. 아버지 식사하셨어요? 먼저 연락드린다는 게 매번 죄송해요."

 "아니다. 방금 주희를 꿈에서 만났구나. 이제 그만 가족이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주희말도 있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엄마랑 방금 통화했는데, 엄마도 주희를 만났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한 번만 만났으면 하더니 이제야 만났다며 엄마가... 웃더라. 이 번 주말에 집으로 갈게. 주원아. 그동안 고생 많았지? 주말에 우리 식사하면서 얘기 나눠보자."


 나만이 주희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주희를 보내지 못한 가족들을 주희는 한 번씩 찾아와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주었다. 스스로 열지 못했던 그 빗장을 주희가 열어줌으로써 우리는 다시 가족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완성되었습니다. 여기 주의 사항 읽어보시고, 착용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


가면은 앞으로 12시간 동안 서서히 흡착되면서 피부로 흡수된다. 그리고 다음날 밤  10시가 지나면 기면증에 빠지게 되니 꼭 안전한 곳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업데이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재부팅해야 하는 핸드폰과 같은 시간인 듯하다. 주의사항을 이미지로 한 번 남기고, 마스크 시트를 얼굴에 올렸다.

 차가운 느낌일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따뜻한 시트는 내 얼굴 전체를 감쌌고 곧 피부들이 팽팽하게 당겨짐을 느꼈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내일은 꼭 집에 일찍 들어가세요. 다시 만나 뵙게 될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행복을 찾길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꼭 행복을 돼찾길 저 역시 기도드릴게요."

 마지막 인사로 우리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이 촉촉해 진건 내 느낌이었을까? 모르는 척 뒤돌아 나오면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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